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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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8 오늘의 시
April 8,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 은별입니다. 저의 10대는 샤이니로 가득 했습니다. 샤이니의 종현님을 유독 좋아했어요. 오늘은 다정한 그분의 생일입니다. 어린 제게 “위로”의 참뜻을 알게 해준 그분. 위로는 상황은 바꿀 수 없지만 사람을 바꾼다고 굳게 믿게 해준 그분. 그분을 향한 애정을...
2025.04.07 오늘의 시
April 7, 2025
장수양 <여는 시> 물을 좋아하지만 유리병 속에 든 물은 아니었다 나는 글자를 적었다 그리고 물이 내게로 올 때까지 기다렸다 물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물은 生도 아니었다 물안에 든 生이 있었다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유리병에 넣으면 生은 사라졌다 만져지는 하늘이 내 머리 위에...
2025.04.06 오늘의 시
April 6, 2025
김연덕 <여름장미> 던졌는데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공처럼 공의 공포처럼 잊히지 않는 밤이 있다 그것은 날이 밝으면 고개를 수그리고 물을 끓이고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창밖에 흐드러진 장미에 대해 말한다 어떤 죽음이 그렇듯 상담사가 그렇듯 그것은 주목받기도...
2025.04.05 오늘의 시
April 5, 2025
문정희 <고독> 그대는 아는가 모르겠다혼자 흘러와혼자 무너지는 종소리처럼온 몸이 깨어져도흔적조차 없는 이 대낮을울 수도 없는 물결처럼그 깊이를 살며혼자 걷는 이 황야를비가 안 와도늘 비를 맞아 뼈가 얼어붙는얼음번개그대 참으로 아는가 모르겠다
2025.04.04 오늘의 시
April 4, 2025
김명애 <봄볕>그대가 그립다고 전해달래요설레는 마음에 머뭇거리다이제사 안부를 전한대요아쉽게 돌아가는 길목에선하얀 목련이더없이 헤프게 웃고 있네요
2025.04.03 오늘의 시
April 3, 2025
차유오 <비워내기> 오래된 물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목이 잘린 뒤에도 목걸이를 건 귀신을 보며 생각했다 깨지기 쉬운 것을 사랑했지 깨지는 순간이 되면 온몸을 다해 조각나는 광경을 더는 손에 쥘 수 없는 작은 유리컵과 이러 붙일 수 없는 뾰족함 빽빽하게 솟은 수풀 속에 숨어 하루를...
2025.04.02 오늘의 시
April 2,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입니다. 환절기와 꽃가루 덕분에 기침이 멎지 않는 요즘입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셔요. 이윤학 <버드나무 꽃가루> 길턱에 모인 버드나무 꽃가루를 한 주먹 쥐었다. 라이터 불을 붙이면 금세 타버리는 버드나무 꽃가루 무수히 씨가 박힌 버드나무 꽃가루를 쥐었다. 눈이...
2025.04.01 오늘의 시
April 2,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입니다. 너무 늦었네요. 만우절이랍시고 거짓말처럼 시를 보내기를 잊었습니다. 정재영 <사월 초하루> 일 년 내내만우절로 보냈던 아무것이나 내미는히드라의 얼굴에 씌운가면의 웃음. 하루만은거짓이 진실이라고 오늘만은모두가 그랬었다고통회하는 축제.
2025.03.31 오늘의 시
March 31, 2025
김민정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지지난 겨울 경북 울진에서 돌을 주웠다 닭장 속에서 달걀을 꺼내듯 너는 조심스럽게 돌을 집어들었다 속살을 발리고 난 대게 다리 두 개가 V자 안테나처럼 돌의 양옆 모래 속에 꽂혀 있었다 눈사람의 몸통 같은 돌이었다 야호 하고 만세를 부르는 돌이었다...
2025.03.30 오늘의 시
March 30, 2025
나태주 <생일> 꼼지락꼼지락 3월만 되면세상에 나갈 준비로나는 몸이 아프다 60년 가까이 그 모양이다.
2025.03.29 오늘의 시
March 29,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입니다. 오늘 제 친구가 결혼을 했습니다. 둘의 시작부터 지켜봐왔기에 감회가 남달랐는데요. 그 둘을 축하하며 이 시를 바칩니다. 안도현 <결혼이란> 결혼이란 그렇지요, 쌀씻는 소리, 찌개 끓는 소리 같이 듣는 거지요 밥 익는 냄새, 생선 굽는 냄새 같이 맡는...
2025.03.28 오늘의 시
March 28, 2025
강신애 <갈매기> 책장을 넘기자 갈매기가 튀어나왔다 수평선, 열기, 깨어지는 고요의 모서리…… 단어들과 망막의 핏줄을 활시위 당겨 무한천공이 흔들린다 몇 장의 페이지를 되짚어 넘기면 거기 부화한 알들의 둥지가 죽음의 실타래 같고 노을의 음파가 철썩인다 타자기가 종이뭉치를 물고 있다...
2025.03.27 오늘의 시
March 27, 2025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 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2025.03.26 오늘의 시
March 26, 2025
문정희 <문플라워> 이상하다! 봄이 반만 보인다 모처럼 세상에 봄이 왔는데 한쪽 동공이 붉은 실핏줄로 덮여 있다 눈에 안대를 하고 골목을 걷는다 빈터에 쏟아지는 차가운 햇살에 꽃 행상 트럭 기대 서 있다 떠돌이 유기견처럼 발걸음을 멈춘다 봄이 반쯤 닫혔으니 다른 촉수가 다 열렸나...
2025.03.25 오늘의 시
March 25, 2025
이새해 <화요일의 피크닉> 웃음도 화요일도 끝나지 않았지만 피크닉이 끝나가고 있었다 돗자리를 만지작거리는 동안 네 그림자 속으로 날벌레 몇 마리가 앉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가는 자전거와 자전거 사이에서 흙먼지가 흘러 다녔다 그것을 알려준 너를 이해하려고 가만히 손목을 쥐고...
2025.03.24 오늘의 시
March 24, 2025
구현우 <선유도> 창밖의 비를 좋아하지만 비에 젖는 건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너에게 해주려고 한 얘기가 있어 선유도에서 만나자 선유도에는 오만 색으로 어지러운 화원이 있으니까 녹음된 빗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안정을 찾는 너에게 어울린다 믿는 풍경이 있어 혀끝이 둔감해지면 입안 가득...
2025.03.23 오늘의 시
March 23, 2025
김소연 <손아귀> 탁상시계를 던져본 적이 있다손아귀에 적당했고 소중할 것도 없었던 것을방바닥에 내던져부서뜨려본 적이 있다부서지는 것은 부서지면서 소리를 냈다부서뜨리는 내 귀에 들려주겠다는 듯이 소리를 냈다고백이 적힌 편지를맹세가 적힌 종이를두 손으로 맞잡고천천히 찢어본 적이...
2025.03.22 오늘의 시
March 22,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입니다. 우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듭니다. 비가 꽤나 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라는 것이죠. 그런 우리는 종종 그 비가 강을 범람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강가에 가 서 있게 됩니다. 참 바보같죠. 사람은 애정 앞에서 죄다 바보가 되나봅니다....
2025.03.20 오늘의 시
March 20, 2025
양안다 <여진> 비가 내리면 창문은 쉽게 울고 있다 아무도 기웃거리지 않는 복도를 지나는 동안 젖은 발자국이 우리를 뒤쫓고 있었다 방금 아이들이 사라진 것 같은 교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음악을 끄고 빗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불안은 혼자...
2025.03.19 오늘의 시
March 19, 2025
김영산 <그녀의 몸은 폭격을 맞은 듯 당당했다> 그녀의 젊은 몸은 폭격을 맞은 듯 당당했다. 그러니 알몸인들, 그녀는 맞서지 않는가? 인생, 전쟁 총알이 박히고 폭격을 맞고 지옥의 환한 수술실에, 혀끝에 피를 묻히고, 웃고 떠들고, 의사들이 칼질을 해대도 누군들, 지구상에 없는,...
2025.03.18 오늘의 시
March 18, 2025
박소란 <갑자기 내린 비> 기다렸다는 듯 우산을 꺼내 펴는 것이다 조금도 놀라지 않고 허둥지둥하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들 등이나 어깨가 살짝 젖는 건 자연스럽고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제법 그럴듯한 지도가 하나 생겨날 때까지 모르는 골목 모르는 가로등이 탁한 눈을...
2025.03.17 오늘의 시
March 17, 2025
이병률 <사랑의 역사>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힌 한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혔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징표입니다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2025.03.16 오늘의 시
March 16, 2025
김소월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2025.03.15 오늘의 시
March 15, 2025
강우근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너를 그것과 바꿔 부를 수 있을 것이다창가에 키우는 식물이 많아질수록 너의 습관과 기분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식물에는 모두 그 씨앗을 흙 속에 묻은 정원사의 영혼이 담겨 있어죽어가는 식물에서 조심스레 흘러나온 영혼이 너로...
2025.03.14 오늘의 시
March 14, 2025
이장욱 <얼음처럼> 나는 정지한 세계를 사랑하려고 했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세계를 나는 자꾸 물과 멀어졌으며 매우 견고한 침묵을 갖게 되었다. 나의 내부에서 나의 끝까지를 다 볼 수 있을 때까지. 저 너머에서 조금씩 투명해지는 것들을. 그것은 꽉 쥔 주먹이라든가 텅 빈 손바닥...
2025.03.13 오늘의 시
March 13, 2025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 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시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2025.03.12 오늘의 시
March 12, 2025
양안다 <밝은 성> 너와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것 우리는 언제나 밤에 대화를 나누었지만 미래를 떠올리면 어둠보다 환한 빛이 떠오르지 과거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거나 서로의 눈을 감겨 주겠지 서로의 미래가 놀랍도록 닮았다는 걸 알게 되면 나는 너에게서...
2025.03.11 오늘의 시
March 11, 2025
나태주 <오늘의 약속> 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 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 매미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2025.03.10 오늘의 시
March 10, 2025
한용운 <꿈과 근심> 밤 근심이 하 길기에 꿈도 길 줄 알았더니 님을 보러 가는 길에 반도 못 가서 깨었구나. 새벽 꿈이 하 쩌르기에 근심도 짜를 줄 알았더니 근심에서 근심으로 끝간 데를 모르것다. 만일 님에게도 꿈과 근심이 있거든 차라리 근심이 꿈 되고 꿈이 근심 되어라.
2025.03.09 오늘의 시
March 9, 2025
육호수 <장마> 우리가 우리에게 발각되지 않는 곳으로 가자 더 많은 공기를 정화할 더 많은 허파가 필요한 오래된 세계에서 더 많은 빙하를 녹일 더 많은 체온이 더 많은 어둠을 흡착할 더 많은 악몽이 더 많은 멸종을 지켜봐줄 더 많은 마음이 필요한 오래된 세계에서 사람인 채로 더...
2025.03.08 오늘의 시
March 8,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입니다. 계속해서 두편의 시가 뒤늦게 동시 배송되는 오류가 뜨고 있습니다. 속히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광호 <방법 5> 너의 변덕을 집에서 쫓아내자 아끼던 발랄함과 귀여움도 사라졌다 나는 황급히 발랄함과 귀여움을 잡았지만 그들은 변덕으로부터 태어난...
2025.03.07 오늘의 시
March 8, 2025
이병률 <오늘의 가능성> 아침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근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비누의 미끄러지는 속도와 그 비누가 바닥에 떨어지는 속도를 지켜봤습니다 제힘으로 펼치고 닫는 것들이 있습니다 매달아놓은 휴지가 저 혼자 힘으로 풀려버리거나 가만히 있던 돌이 구르기 시작하죠 목욕하는...
2025.03.06 오늘의 시
March 6, 2025
유안진 <말하지 않은 말> 말하고 나면 그만 속이 텅 비어 버릴까봐 나 혼자만의 특수성이 보편성이 될까봐서 숭고하고 영원할 것이 순간적인 단맛으로 전락 해버릴까 봐서 거리마다 술집마다 아우성치는 삼사류로 오염될까봐서 '사랑한다' 참 뜨거운 이 한마디를 입에 담지 않는 거다 참고...
2025.03.05 오늘의 시
March 5, 2025
나태주 <풀꽃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2025.03.04 오늘의 시
March 4, 2025
차정은 <토마토 컵라면> 해변가 위 버려진 붉은 조각들은 빛이 나고 물과 맞닿은 금빛 모래들은 황빛의 풍경이었지 차갑게 물든 바다에 발을 담그고 낡은 의자에 앉아 뜨거운 물을 들이붓고 비집고 나오던 새빨간 열기들은 붉은 석류를 매달던 토마토 같았어 우리의 여름은 노을 진...
2025.03.03 오늘의 시
March 3, 2025
김혜순 <별을 굽다>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냈을까 무표정한 저 얼굴 속 어디에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밖에서는 기척도...
2025.03.02 오늘의 시
March 2, 2025
김연덕 <사월 비> 쓰다듬거나 모으지 않아도 괜찮아 샌드위치를 반으로 자르고 빠져나온 아보카도를 줍고 들기 남김없이 먹기 손에서 손 아닌 걸 빼 보세요 무엇이 남는지 무엇이 가는지 무엇이 소리치는지 보고 그대로 두세요 그러니까 궁금해하지도 따뜻해지지도 움켜쥐지도 않기 세계는 이미...
2025.03.01 오늘의 시
March 1, 2025
오병량 <묻다> 종일 마른 비 내리는 소리가 전부인 바다였다 욕실에는 벌레가 누워있고 그것은 죽은 물처럼 얌전한 얼굴, 구겨진 얼굴을 거울에 비추면 혐오는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미개한 해변 위에 몇 통의 편지를 찢었다 날아가는 새들, 날개 없는 새들이 폭죽처럼 터지고...
2025.02.28 오늘의 시
March 1, 2025
안희연 <굉장한 삶> 계단을 허겁지겁 뛰어 내려왔는데 발목을 삐끗하지 않았다 오늘은 이런 것이 신기하다 불행이 어디 쉬운 줄 아니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또 늦은 건 나다 하필 그때 크래커와 비스킷의 차이를 검색하느라 두 번의 여름을 흘려보냈다 사실은 비 오는 날만 골라...
2025.02.27 오늘의 시
February 27,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입니다. 오늘은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보내드립니다. 이 시와 더불어 최백규 시인의 엮은 말 또한 같이 보내드립니다. “슬픕니다. 사랑해서 슬픕니다. 그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눈동자 속에 수선화처럼 그대가 피어나고 이내 외로워집니다. 나는...
2025.02.26 오늘의 시
February 27, 2025
고명재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개와 눈과 아이는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전히 날뛰는 힘을 갖고 싶어서 눈 녹인 물을 내 안에 넣고 싶었다 차갑고 뻑뻑한 팔을 주무르면서 떠난 개들의 눈 쌓인 그릇을 치울 수 있다면 소의 농포를 환부에 슬쩍 바르고 키스하고 이민자와...
2025.02.25 오늘의 시
February 25, 2025
진은영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내가 나를...
2025.02.24 오늘의 시
February 24, 2025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2025.02.23 오늘의 시
February 23, 2025
서안나 <모과>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다
2025.02.22 오늘의 시
February 23, 2025
정호승 <반달>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반달이 보름달이 될 수 있겠는가 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
2025.02.21 오늘의 시
February 21, 2025
나태주 <첫눈> 요즘 며칠 너 보지 못해 목이 말랐다 어제 밤에도 깜깜한 밤 보고싶은 마음에 더욱 깜깜한 마음이었다 몇날 며칠 보고 싶어 목이 말랐던 마음 깜깜한 마음이 눈이 되어 내렸다 네 하얀 마음이 나를 감싸 안았다
2025.02.20 오늘의 시
February 20, 2025
김은지 <종이 열쇠> 잘 구분된 이면지가 담긴 상자가 책상 한편에 고유한 느낌으로 있다 커피의 쓴맛 속에서 초콜릿과 견과류를 느낄 수 있게 되듯 이면지를 좀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경우에든 다시 쓰여도 괜찮은 허물없는 이면지 비밀을 갖고 있어 조심스러운 이면지...
2025.02.19 오늘의 시
February 20, 2025
김경미 <거기에 그 꽃이 있었다면 안 갔을 겁니다> 유도화 핀 마을엘 도착했습니다 유도화꽃 이렇게 많은 줄 모르고 도착했습니다 우표만 하던 여자의 밥알만 하던 의상실 구석 우물같은 화분에 피어 있던 꽃 자주 박살나던 우표와 밥알과 우물 자주 두 발 치켜든 우물을 지켜만 보던 꽃...
2025.02.18 오늘의 시
February 18, 2025
민구 <당신의 옥수수> 결혼은 마라톤 여러분은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손을 잡아주십시오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해야 삽니다 요즘엔 주례 없이 신랑 신부가 편지를 읽거나 양가 어른들이 덕담을 해준다는데 주례사는 끝날 줄 모르고 나는 배가 고파서 식당으로 간다 식당은 하객이 없고 말끔하게...
2025.02.17 오늘의 시
February 17, 2025
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너에게서는 멸종된 과일 향기가 난다 투룸 신축 빌라 보증금 이천에 월세 구십, 어떻게 해야 너를 웃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두 시간 동안의 폭우, 일주일 동안의 아침. 유리병 속 무한히 터지는 기포 현관에 놓인 신발의 구겨진 뒤축이 웃는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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