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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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4 오늘의 시
June 4, 2025
이해인 <반지> 약속의 사슬로 나를 묶는다 조금씩 신음하며 닳아 가는 너 난초 같은 나의 세월 몰래 넘겨보며 가늘게 한숨쉬는 사랑의 무게 말없이 인사 건네며 시간을 감는다 나의 반려는 잠든 넋을 깨우는 약속의 사슬
2025.06.03 오늘의 시
June 3, 2025
최승자 <20년 후에, 지(芝)에게> 지금 네 눈빛이 닿으면 유리창은 숨을 쉰다. 지금 네가 그린 파란 물고기는 하늘 물속에서 뛰놀고 풀밭에선 네 작은 종아리가 바람에 날아다니고,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2025.06.02 오늘의 시
June 2, 2025
황유원 <새들의 아침 운동 연구>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샤워하고 폭포수 마신다 폭포수는 새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 잠시 고요하다가 곧장 수백 미터 위로 상승한다 18cm 검정칼새들이 이구아수폭포를 향해 돌진 난기류를 뚫고서 전속력으로 돌진하다 돌연 폭포 앞에서 속력을 줄이곤 폭포의...
2025.06.01 오늘의 시
June 1, 2025
백은선 <날개가 길어지면 찾아갈게> 괜찮니. 아직 나는 잘 모르겠어. 내가 네게 무언가를 말해도 되는지. 돌을 손에 꼭 쥐어보며 차가움 속 꽃잎을 하나둘 건져 올려본다. 하루도 나를 그냥 재운 적 없는 네 혀와 발. 무한하게 길어지는 마음. 끝없이 돌고 있는 바람 속 네가 눈 뜨면...
2025.05.31 오늘의 시
May 31, 2025
강사랑 <봄비 마중> 예쁜 임이 오신다기에 노란 우산 하나 들고 봄 마중 갑니다. 시가 되고 그림이 되는 풍경을 한 아름 안고 소리 없이 사뿐사뿐 걸어오십니다. 봄 바구니에 쑥과 냉이를 가득 담고 해맑은 미소 한가득 담아 오십니다. 진달래와 개나리를 닮아 가녀린 몸이지만 오시는 임...
2025.05.30 오늘의 시
May 30, 2025
양안다 <양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될 때가 있다 잠들기 바로 직전,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하다 잠들었는지 윤, 너도 모르겠지 언젠가 목줄에 묶인 개가 스스로 목줄을 끊을 수 있는지에 대해 영과 통화하며 떠들 때 뉴스에선 자신이 죽을 날짜를...
2025.05.29 오늘의 시
May 29, 2025
강지이 <수술>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매우 조용한 공간이 나타난다 먼지가 쌓여있는 침대 불이 들어오지 않는 복도 어떤 단어든 소리 내어 말해도 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지는 저 침대에 누워 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누워서 누군가를 기다렸던 것 같다 침대에 누워...
2025.05.28 오늘의 시
May 28, 2025
강지이 <여름> 그곳에 영화관이 있었다 여름엔 수영을 했고 나무 밑을 걷다 네가 그 앞에 서 있기에 그곳에 들어갔다 거기선 상한 우유 냄새와 따뜻한 밀가루 냄새가 났다 너는 장면들에 대해 얘기했고 그 장면들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두워지면 너는 물처럼...
2025.05.27 오늘의 시
May 27, 2025
이지율 <밤의 도시> 가시광선 절벽 같은 어둠을 뛰어내리면 석촌호수는 쓸쓸한 도시 하나를 건설한다. 물그림자를 발목 잡힌 월드타워 허공뿐인 높이 보다 불빛 촘촘한 바닥 아래가 더 궁금하다는 듯이 물의 속살 뒤적거리며 아래로만 깊어지고 약속을 기다리는 빈 의자 위에 고독을 뿌리째...
2025.05.26 오늘의 시
May 26, 2025
김춘수 <대치동의 여름> 내 귀에 들린다 , 아직은 오지 말라는 소리 언젠가 네가 새삼 내 눈에 부용꽃으로 피어날 때까지 불도 끄고 쉰 다섯 해를 우리가 이승에서 살과 살로 익히고 또 익힌 그것 새삼 내 눈에 눈과 코를 달고 부용꽃으로 볼그스름 피어날 때까지 하루 해가 너무 길다
2025.05.25 오늘의 시
May 25, 2025
이해인 수녀님 <생일을 만들어요, 우리>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한 날 첫 꿈을 이룬 날 기도하는 마음으로 희망의 꽃삽을 든 날은 언제나 생일이지요 어둠에서 빛으로 건너간 날 절망에서 희망으로 거듭난 날 오해를 이해로 바꾼 날 미움에서 용서로 바꾼 날 눈물 속에서도 다시 한번 사랑을...
2025.05.24 오늘의 시
May 24, 2025
최영미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 너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 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2025.05.23 오늘의 시
May 23, 2025
박소란 <티타임> ‘위에서 물 떨어져요’ 메모를 발견하면서 문득 고개를 젖히면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천장에 번진 얼룩, 어느 겁 많은 눈에서 난 눈물처럼 잊고 지낸 나를 떠올리게 된 것 같습니다 위험해요 어서 자리를 피해요! 다급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찾은 카페에서...
2025.05.22 오늘의 시
May 23, 2025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여름에는 저녁을마당에서 먹는다초저녁에도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멍석멍석 위에는환한 달빛달빛을 깔고저녁을 먹는다 숲 속에서는바람이 잠들고마을에서는지붕이 잠들고 들에는 잔잔한 달빛들에는봄의 발자국처럼잔잔한풀잎들 마음도달빛에 잠기고밥상도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2025.05.21 오늘의 시
May 21, 2025
민구 <메모리얼 스톤> 개가 죽으면 그 뼈를 녹여서 돌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돌에 색을 입힐 수 있고 살아 있을 때 쌓은 추억을 유리병에 담아둘 수 있다고 한다 산책을 좋아하는 개라면 손가락에 낄 수 있고 걷지 못하는 개라면 목에 걸고 다니면 되겠지 우리 집에 살던 녀석은...
2025.05.20 오늘의 시
May 20, 2025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그 이삿짐에 경대라고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2025.05.19 오늘의 시
May 20, 2025
김륭 <꽃의 재발견> 새봄, 누군가 또 이사를 간다재개발지구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야 코딱지 후비며 고층아파트로 우뚝 서겠지만개발될 수 없는 가난을 짊어진 양지전파상 金만복 씨도 떠나고 흠흠 낡은 가죽소파 하나 버려져 있다좀 더 평수 넓은 집을 궁리하던 궁둥이들이 깨진 화분처럼...
2025.05.18 오늘의 시
May 18,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 은별입니다. 그간 격조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며 이사를 하느라 너무나 정신이 없었네요. 다시 달려보겠습니다. 안도현 <처음처럼> 이사를 가려고 아버지가벽에 걸린 액자를 떼어냈다바로 그 자리에빛이 바래지 않은 벽지가새것 그대로남아 있다이 집에...
2025.05.11 오늘의 시
May 11, 2025
고명재 <오늘부터 우리는> 산책길을 걷는데 길이 좁아져 있었다 호박잎이 너무 자라서 길로 넘친 것 여름은 아름다운 침범이구나 사람들이 부푼 잎을 밟지 않으려 일렬로 길을 걸으며 웃기 시작했다 희망은 그런 좁은 길에서 급류를 타지 같이 걸으려면 팔짱을 꼭 껴야만 하네? 우리는 팔목을...
2025.05.10 오늘의 시
May 10, 2025
안미옥 <캔들> 궁금해 사람들이 자신의 끔찍함을 어떻게 견디는지 자기만 알고 있는 죄의 목록을 어떻게 지우는지 하루의 절반을 자고 일어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흰색에 흰색을 덧칠 누가 더 두꺼운 흰색을 갖게 될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은 어떻게 울까 나는 멈춰서 나쁜 꿈만 꾼다 어제...
2025.05.09 오늘의 시
May 9, 2025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2025.05.08 오늘의 시
May 9, 2025
최승자 <일찍이 나는>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찍이 나는...
2025.05.07 오늘의 시
May 7, 2025
장수양 <창세기> 서리가 어린 창은 사람의 얼굴 같다. 매일 들여다보아도 하얗게 질려 있다. 갈라진 곳으로 호흡을 나눈다. 나의 얼굴도 희어진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아이가 도로를 지나간다. 혼자. 사라진 자리가 희다. 너무 많은 길이 다른 길을 찌르고 있어. 생채기에서 빠져...
2025.05.06 오늘의 시
May 6, 2025
김남조 <너를 위하여>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祝願)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2025.05.04 오늘의 시
May 4, 2025
박시하 <일요일> 차가운 유리병 속에서 내 취미는 영원히 무릎을 꿇는 것 ​ 슬퍼지기 위해서 이별하는 연인들처럼 증거도 없이 믿었다 ​ “너는 슬픈 시를 쓰는구나. 슬픔이 시가 되었으니 안 슬퍼야 할 텐데. 시가 된 슬픔은 어느 다른 나라로 잠시 여행을 간 거야. 어느 날 건강히...
2025.05.03 오늘의 시
May 3, 2025
박시하 <길 위에서> 흔히 안개에 덮인다 사라질 나를 사라질 네가 안는 일이다 나이면서도 너이다 멀리 있거나 매우 가깝다 음악처럼 걸음을 연주한다 각자의 리듬을 껴안고 발이 문득 빛나다가 꺼진다 걸었으니까 신발이 닳았으니까 안개가 울려 퍼진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가끔은 술잔이...
2025.05.02 오늘의 시
May 2, 2025
박준 <미아> 사람들에게 휩쓸려 잡고 있던 손은 놓치고 가방까지 어딘가에 흘리고 그렇게 서로를 잃어버렸을 때 다른 곳으로 가면 돼 안 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처음 든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해 네가 나를 찾을 필요는 없어 내가 너를 찾을 거야
2025.05.01 오늘의 시
May 1, 2025
박준 <다시 공터> 네가 두고 간 말을 아직 가지고 있어 어디에 쓰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버릴 수 있었을 까 그러니 마냥 넣어두고 다녔지 작은 열쇠처럼 가끔 잘 있나 꺼내보았다가도 이내 다시 깊숙이 넣어두고 혼자 있게 했지
2025.04.30 오늘의 시
April 30, 2025
백향옥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 부풀어오르는 흙이 좋아 맨발로 숲을 걸었다 바닷물에 발을 씻다가 만난 돌은 손바닥에 꼭 맞는 매끄러운 초승달 모양 열병을 앓을 때 이마를 짚어주던 당신의 찬 손 분주하게 손을 닦던 앞치마에 묻어 온 불 냄새, 바람 냄새, 놀란 목소리 곁에...
2025.04.29 오늘의 시
April 29, 2025
장희수 <사력>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집에선 손에서 놓친 휴지가 바닥을 돌돌 굴렀다 무언가 멀어져가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어떤 마음은 짠맛을 욱여가며 삼키는 일 같았다 그중 가장 영양가 없는 것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본 적 있다 ​...
2025.04.28 오늘의 시
April 28, 2025
한백양 <웰빙> 힘들다는 걸 들켰을 때 고추를 찧는 방망이처럼 눈가의 벌건 자국을 휘두르는 편이다 너무 좋은 옷은 사지 말 것 부모의 당부가 이해될 무렵임에도 나는 부모가 되질 못하고 점집이 된 동네 카페에선 어깨를 굽히고 다니란 말을 듣는다 네 어깨에 누가 앉게 하지 말고 그러나...
2025.04.27 오늘의 시
April 27, 2025
한백약 <왼편> 집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다 오랫동안 빌라를 떠나지 못한 가족들이 한 번씩 크게 싸우곤 한다​ 너는 왜 그래. 나는 그래. 오가는 말의 흔들림이 현관에 쌓일 때마다 나는 불면증을 지형적인 질병으로 그 가족들을 왼손처럼 서투른 것으로​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2025.04.26 오늘의 시
April 26, 2025
이근석 <여름의 돌> 나는 토끼처럼 웅크리고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난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 형은 여기...
2025.04.25 오늘의 시
April 25, 2025
안수현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윗집은 오늘도 많이 더운가 보다 아무렇게나 잘라두어 우리 집 창문에 아른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시끄럽다면서도 마른 토마토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둔다 새순 발끝을 받치고 있는 큰 줄기 손끝이 새파랗다 너를...
2025.04.24 오늘의 시
April 24, 2025
김도은 <적당한 힘> 새를 쥐어 보았습니까? ​ 새를 쥐고 있으면 이 적당한 힘을 배우려 학교엘 다녔고 친구와 다퉜고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온갖 소리를 가늠하려 했었던 일을 이해하게 됩니다 ​ 온기는 왜 부서지지 않을까. ​ 여러 개의 복숭아가 요일마다 떨어지고 떨어진 것들은...
2025.04.23 오늘의 시
April 23, 2025
박규현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 친애하는 메리에게 나는 아직입니다 여기 있어요 ​불연속적으로 눈이 흩날립니다 눈송이는 무를 수도 없이 여기저기 가 닿고요 파쇄기 속으로 종이를 밀어 넣으면 발치에 쌓이던 희디 흰 가루들 털어도 털어도 ​손가락은 여전합니다 사람을 만들 수도 있을 것...
2025.04.22 오늘의 시
April 22, 2025
김진환 <길 찾기> 차창 너머 낯선 가게들잠시 눈감은 사이에내릴 정류장을 지나쳤나인터넷 지도로 확인한다버스의 노선과 파란 점의 위치를 나는 길 잃지 않았다인터넷 지도에 따르면이 길은 내가 아는 길매일같이 지나는 왕복4차로 거기서 나는 흰색과 붉은색 보도블록의 배열을 배웠고넘어져...
2025.04.21 오늘의 시
April 21, 2025
백아온 <디스토피아> 플라스틱 인간을 사랑했다. 손등을 두드리면 가벼운 소리가 나는.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자기가 피우는 카멜 담배의 낙타가 원래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다거나 레몬청을 시지 않게 만드는 법 같은 것들을 말해줬다. 나는 그의 말들을...
2025.04.20 오늘의 시
April 20, 2025
강우근 <단순하지 않은 마음>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눈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2025.04.19 오늘의 시
April 19, 2025
신이인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오리너구리를 아십니까?오리너구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아에게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듯강의 동쪽을 강동이라 부르고 누에 치던 방을 잠실이라 부르는 것처럼 나를 위하여 내가 하는 일은밖과 안을 기우는 것, 몸을 실낱으로 풀어, 헤어지려는 세계를...
2025.04.18 오늘의 시
April 18, 2025
박준 <겨울비> 비는 당신 없이 처음 내리고 손에는 어둠 주름인지 모를 너울이 지는 밤입니다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광장으로 마음 곧잘 나섰지만 약을 먹기 위해 물을 끓이는 일이 오늘을 보내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한결 나아진 것 같은 귓병에 안도하는 일은...
2025.04.17 오늘의 시
April 17, 2025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눈이 작은 일도눈물이 많은 일도자랑이 되지 않는다하지만 작은 눈에서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나는 이제철봉에 매달리지...
2025.04.16 오늘의 시
April 16,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 은별입니다. 저는 2014년 4월 16일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 날 제가 무엇을 했고, 봤고, 또 들었는지 어제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저 기억하기를 약속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여러분들께 보내드립니다. 이재무 <약속> 자주자주 하늘을...
2025.04.15 오늘의 시
April 15, 2025
한강 <서시>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나에게 말을 붙이고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오래 있을거야.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 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잘 모르겠어.당신, 가끔 당신을...
2025.04.14 오늘의 시
April 14, 2025
백은선 <열대병> 초록 대문 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아이 미지근한 밤공기 가로등 주위를 배회하는 작은 벌래들의 소문, 그 뒤를 쫓는 긴 꼬리의 고양이들 공중에서 미끄러지는 먼지들 동그라미 동그라미 주문처럼 읊조리는 하나의 단어 배운 적도 없는데 터져 나오는 첫울음처럼 마주 잡은 두...
2025.04.13 오늘의 시
April 13, 2025
구현우 <회색> 가까운 곳에서 연기가 난다.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건물들 사이로 더 아름다운 창문들 너머로 드러나는 사라지는 더욱더 아름다운 얼굴들, 사람이거나, 사람을 닮은 형상이거나 얼핏 보이는 유령들 연기 나는 곳에서 불이 났다는 얘기가 있고 누가 다쳤다는...
2025.04.12 오늘의 시
April 12, 2025
익명 <쭉정이> 밥알을 씹다가하나, 속 빈 쭉정이가 들어왔다 벼는 수확되어타작을 거치고바람을 지나 겉껍질은 날아가고속 빈 낱알은 버려졌다 도정의 칼날마저 지나모든 것이 빛나는 쌀알로 남았을 때도 그 모든 바람에도그 모든 진동에도하나쯤은 남는다나는 그 하나일지도 모른다 속이...
2025.04.11 오늘의 시
April 11, 2025
민구 <투명 인간> 망토를 걸치면 들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신기한 게 나타나면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멀뚱히 서 있기만 해도 누군가는 경고 없이 공포탄을 쏘고 적금을 깨려고 들어간 은행에서 손모가지는 어디로 날아갔을까 보이지 않아서 모르겠네 맨 정신으로 동물원에 간 어른들이...
2025.04.10 오늘의 시
April 11, 2025
안미옥 <사운드북> 노래는 후렴부터 시작합니다 후렴에는 가사가 없어요 사랑 노래입니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모르겠어요 잘하고 있는 건지 마지막에 했던 말을 자꾸 번복합니다 주소도 없이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엽서도 있습니다 모든 일은 동시다발적으로...
2025.04.09 오늘의 시
April 9, 2025
고명재 <틈> 네가 모는 자전거 뒤에 비스듬히 앉아서구두코를 스치는 유채꽃들을 보는 것아름다운 수동성옆으로 흐르는작은 풀꽃과 톱니와 자갈의 강물 너는 뒤에 앉은 얼굴은 보지 못한 채숨을 색색거리며 은빛 페달을 밟고나는 너의 따스한 배에 손을 얹고서왼편의 풍경 속으로 나아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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