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4 오늘의 시
서귀옥 <모자는 많고 죄는 다양해요>
죄지은 사람과 죄 지을 사람은 모자를 눌러쓰는 버릇이 있어요
죄를 덮는 덴 모자만한 게 없죠
모자를 쓰고 죽이고 싶은 사람 떠올리면 죽인 거나 다름 없어요
모자는 중독성이 강해요
이걸 죽여, 말아! 모자도 쓰지 않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 겁주는 방법은 모자 눌러쓰고 집을 나오는 거예요 그 맛을 보면 빠져나오기 힘들죠
사람보다 모자가 잘 어울리는 생명체는 없어요 모자가 나날이 진화하는 이유죠
헌팅캡은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혐의에 잘 어울려요 베레모는 피의 농담을 채색할 때 더없이 좋죠 살인 혐의로 취조받는 샤론 스톤에게 다리 꼬도록 연출한 감독은 천재가 아닐까 해요 매혹은, 완벽한 알리바이로 장식한 클로슈니까
어려운 걸 쉽게 만드는 덴 절대 모자만한 게 없죠 목적이 분명해서 쓰는 순간 제 힘이 어대까지 미치는지 알고 싶어지거든요 고개 숙이지 못하는 불편에도 쓰지 못해 안달이죠
다들, 있잖아요?
복수가 꿈인 적……
신체 절단 마술을 봤거든요 피를 아프게 하는 건 초짜나 하는 짓, 금발 어시스턴트의 팔다리가 명쾌하게 분리되면 마술사는 무죄, 그가 검정 모자를 들어 인사할 때 봤어요 미궁에 빠진 영혼들이 흰 비둘기로 바뀌는 것을
무섭죠, 당연히 뼈를 찌르고도 용의 선상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과 차를 마시고 있거든요
모자가 하나밖에 없니?
모자에 참 관심들 많아요 남의 죄를 센다고 자신의 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미스터리죠 모든다고 모았는데 결정적일 때 안 보이고, 챙이 무뎌진 애착 모자 하나 남았거든요 창 없는 방에서 그걸 푹 눌러쓰고 흐흐흑…… 웃을 때 전 인류를 도륙하고 혼자 살아남은 기분
진짜로 쓸 만한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땐 그 누구도 믿어선 안 돼요 어이없게 죽은 사람들 대부분은 살려줄지 모른다고 끝까지 믿었거든요
신상 모자 검색중이에요 모자 고를 땐 신랄하게,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것만큼 최악은 없으니까
내일은 새빨간 비니를 쓰기 딱 좋은 날씨래요
여러분, 모두 좋은 꿈 꾸세요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