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5 오늘의 시
이수진 <첫눈이 내리면 꽃집>
첫눈이 내리면
나는 내 몸 어딘가에 앉고 싶어진다
기억에 없는 어느 시간이
막 들이밀고 와서
설렘을 한가득 피워낼 때면
나도 모르게 오후의 불안 뒤로 두 걸음 물러나곤 하였는데
그날은
거기 꽃집이지요
어떤 목소리가 내게 들이닥쳤다
나는 얼결에 존재와 부재의 내통으로
이때껏 슬픔이 잘 지내고 있다는
난데없는 안부들이
수국으로 제라늄으로 피어나는 시간을 듣고 있었다
가만히 그리움이 자라는 동안
어느 천사의 동행처럼
나는 거기에 잠시 속해 있었다
잘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대답 없는 우두커니에
꽃이 관여하지 않는 흔들림이 스미듯
부름과 무답 사이로
잠시 머무르다 물들기도 하고
문득 돌아보다 닮아가기도 했을
한때 우리였을 순간들
지금은 잊은 것도 잊은 꽃집이라는 꿈
가만히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까지
첫눈이 꾸는 꿈에
내가 앉은 건지 눈이 앉은 건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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