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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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1 오늘의 산문
August 1, 2025
<그런 사람들> - 안리타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그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말을 늘 남기는 사람, 말을 남긴 채 영영 사라진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말의 끝이 궁금한 사람. 이제부터 당신의 말들을 이어서 해야 한다. 온점 뒤는 늘 나의 몫이라, 그것을 어떻게 돌볼까. 나는...
2025.07.31 오늘의 시
July 31, 2025
이새해 <여름으로부터> 사람들은 매일 춤을 춰. 공원수 주위에 모여서 추고 페인트가 벗겨진 옥상에서 춘다. 너는 파트너 없이도 췄다. 여름 밤 거리에서 췄고 눈 덮인 해변에서 췄지. 아무도 없는 방에서 팔을 흔들던 네 모습을 나는 누워서도 본 것 같았다. 언젠가 한 사람이 내...
2025.07.30 오늘의 산문
July 30,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입니다. 어제 보내드린 시에 오늘자 날짜를 찍어 보내드렸더군요. 화들짝 놀라셨을 구독자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제가 유독 위로 받은 글을 보내드립니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 하태완 [나는 너랑 노는 게 제일 좋아] 그냥 괜찮다고 말해주고...
2025.07.30 오늘의 시
July 29, 2025
한강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거리 한가운데서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았지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선 채로 기다렸어, 그득 차오르기를 ​ 모르겠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는지...
2025.07.28 오늘의 소설
July 28, 2025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中 -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나는 사 대째 내려오는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네. 어려서부터 하느님에 대한 말을 싫도록 들었고 예수님에 대해서, 섭리에 대해서도 귀가 아프게 들었지. 하지만 전쟁을 거치며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꼈어. 그리고...
2025.07.27 오늘의 시
July 27, 2025
김개미 <나는 암사마귀처럼>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풀잎에 앉아 있었던 것 같아 오랫동안 여름이었던 것 같아 풀잎처럼 나뭇잎처럼 바람처럼 호흡까지 맥박까지 초록이었던 것 같아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너를 기다렸던 것 같아 너와 헤어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너를 기다렸던 것 같아...
2025.07.26 오늘의 소설
July 26, 2025
조예은 [입속 지느러미] 中 그는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계속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이해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다 상관없어져.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지.어차피 끝내 알 수 없을 테니까. 나 아닌 모든 존재는 결국 미지의...
2025.07.25 오늘의 단상
July 25, 2025
<드라이 플라워> - 안리타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나는 내 몸짓의 완성이 궁금하다, 거울을 본다. 어쩌면 인간은 하나의 완성을 위해 여러 동작을 연구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식물은 계절마다 정확한 태도, 피어나는 절정이 있겠지만 나의 정정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당신,...
2025.07.24 오늘의 소설
July 24, 2025
<광화문 삼거리에서 북극을 가려면> 中 - 권혁일 [첫사랑의 침공] 수첩에는 우리가 적어 놓은 지구 여행 버킷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서현이 보고 싶다는 곳, 전부 보여 주고 싶어.” “메로, 이거 좀 기분이 이상한데? 지구인이 카뎀한테 지구 여행 가이드를 받고 있는 것...
2025.07.23 오늘의 산문
July 23, 2025
<괜한 마음> - 가랑비메이커 [가깝고도 먼 이름에게] 괜한 마음을 써볼까. 음음음, 허밍만으로도 내가 떠올리는 노래를 이어 불러줬으면 하는 괜한 마음, 편안한 자리를 두고 비좁은 구석을 꾸역꾸역 찾고 싶은 마음 말이야. 그늘진 자리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선잠을 자고 싶어....
2025.07.22 오늘의 시
July 23, 2025
이향 <무슨 사연이기에> 모임 뒤 마지막 남은 신발처럼 어둡다고 할 때, 잎이 빠져나오거나 사과가 반으로 갈라질 때처럼 말해버리면 다시는 어두워질 수 없을 것 같아서, 하지도 않은 내 사랑은 영원히 떠돌고 있다
2025.07.21 오늘의 소설
July 21, 2025
<오렌지빛이랄지> 中 - 이상우 [핌 오렌지빛이랄지] 샨츠는 메일을 읽었다. 짧았고 아마 그래서 울지 않을 수 있었다. 냉장고에 기대 앉아, 하스를 쓰다듬으면서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손깍지에 차오르는 부드러움과 골골거림만이 주위 가득 아주 잠시. 바닥이 미세하게 울려오고...
2025.07.20 오늘의 산문
July 20,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 은별입니다. 그동안 소홀했습니다. 사실 이때껏 거의 200편에 가까운 시를 보내드리다 보니, 점점 제 밑천이 드러나더군요. 오늘부터는 산문과 소설 일부분도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날은 ‘오늘의 시’가, 또 어느 날은 ‘오늘의 산문’이, 그리고 또 어느...
2025.07.15 오늘의 시
July 15, 2025
차정은 <토마토 레시피> 낭만 속 바닷물 20g 여름 한 스푼 50g 해변 속 뜨겁게 달궈진 조개껍데기 2개 갈대밭에 매달린 꿀 80g 마지막으로 뜨거운 사랑을 함께 8분 동안 구워내면 노을 진 들판에 홀로 남겨진 청춘의 토마토 한 송이가
2025.07.13 오늘의 시
July 13, 2025
이향이 <첫사랑> 아직도 꽃으로 피어있다 차마 사랑이라고 이름 지을 수 없었던 그 첫사랑이 수십 년의 나이를 먹은 후에도 미처 못 본 속 마음과 하루 삼시세끼, 매달 생활비 걱정을 나누어 보지 못한 산다는 궂은일로 부대껴 보지 못한 그래서인지 항상 꽃처럼 아름답다 한 번도 남자...
2025.07.12 오늘의 시
July 12, 2025
安與峻 <四季> 누군가 나에게 청춘을 물어봤을 때, 나는 청춘이 그저 지나간 시간이라 답하였다. 누군가 다시 나에게 청춘을 물어봤을 때, 나는 청춘이 그저 현재를 살아가는 원동력이라 답하였다. 푸를 청(靑), 봄 춘(春). 그 무엇보다 푸르고 눈부신 봄이거늘, 그 푸르른 계절 속을...
2025.07.11 오늘의 시
July 11, 2025
윤석구 <첫눈에 반하다> 첫눈에 반하는 것은 눈빛이 스파크처럼 부딪쳐 가슴에 와 닿는 황홀한 순간이다 짝사랑이 그랬고 첫사랑이 그랬다 짝사랑은 아파도 좋았다 혼자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그러나 잊지 못할 추억으로는 남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첫눈이 되었을 텐데 그가 누군지 모른다...
2025.07.09 오늘의 시
July 9, 2025
나태주 <사는 법>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2025.07.08 오늘의 시
July 8, 2025
유선혜 <흑백 방의 메리> 우리는 새집으로 이사 올 때 빨간 화분 하나를 샀다. 그 식물의 원래 이름은 알 수 없었고 메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잎이 무성하지는 않았다. 메리 메리 부르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고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창가에 메리가 있었다. 빛이 메리를...
2025.07.07 오늘의 시
July 7, 2025
서안나 <늦게 도착하는 사람-상사화相思花> 꽃은 과거와 미래의 나의 사랑을 증명한다 내가 지상에서 사라질 때 당신은 꽃이란 이름으로 당신에게 도착한다 없는 나는, 있는 당신을 향해 손을 내민다 당신에게 내미는 나는 이미 지워진 손 그러니까 나는 많이 낡았고 뿌리와 줄기의 초록은...
2025.07.06 오늘의 시
July 6, 2025
박은지 <정말 먼 곳> 멀다를 비싸다로 이해하곤 했다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 먼 곳으로 떠나기도 했지만 정말 먼 곳은 상상도 어려웠다 그 절벽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어서 언제 사라질지 몰라 빨리 가 봐야 해 정말 먼 곳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었다 돌이 떨어지고 흙이...
2025.07.04 오늘의 시
July 4, 2025
박준 <종암동>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2025.07.03 오늘의 시
July 3, 2025
황유원 <여몽환포영> 죽어도 된다 우린 그날 저승처럼 컴컴한 해변에 앉아 있다가 안전요원들의 눈을 피해 하나둘 밤바다로 뛰어들었지 안전하지 않아도 된다 파도 소리의 저음에 경박한 호루라기 소리 섞어주며 우린 밤새 속초의 밤바다 잠들지 않게 했지 사실 난 죽을까 봐 좀 무서워서...
2025.07.02 오늘의 시
July 2, 2025
서안나 <전생(前生)을 생각하다> 책상서랍을 정리하다보면 책상의 前生이 보인다 책상표면에 매끄럽게 그려진 결마다뿌리와 가지의 힘이 모여 있다나이테로 몰려든 경계와 경계를 넘나들던 힘들이물을 빨아올리던 뿌리의 힘들이나무의 옹이를 향해 제 몸을 둥글게 구부려가며단단한 우주를 만들고...
2025.07.01 오늘의 시
July 1, 2025
김경희 <여름방학의 노래> 찬란한 비바체의 서울은 공룡에게 맡기고 높이 멀리 달리기의 명문학교도 잠시 안녕 하고 특종당나귀 소나타는 하늘 너머 드롭프스로 바꿔 태양에 단맛이나 찐득이 보태드리고 흙이 그대로 신발인 떡두꺼비 맨발로 안단테에서 더 렌토로 지자 걸음~ 뚱딴지가 알 굵게...
2025.06.30 오늘의 시
June 30, 2025
안희연 <파트너> 너의 머리를 잠시 빌리기로 하자 개에게는 개의 머리가 필요하고 물고기에게는 물고기의 머리가 필요하듯이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오더라도 놀라지 않기로 하자 정면을 보는 것과 정면으로 보는 것 거울은 파편으로 대항한다 잠에서 깨어나면 어김없이 멀리 와 있어서...
2025.06.29 오늘의 시
June 29, 2025
안희연 <밤가위> 가위는 가로지르는 도구다. 가위는 하나였던 세계를 둘로 나누고 영원한 밤의 골짜기를 만들고 한 사람을 절벽에 세워두고 목소리를 듣게 한다. 발아래, 당신의 발아래 내가 있으니 그냥 돌아가지 말아요. 절벽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가위는 있다. 그는 밤 가위로...
2025.06.28 오늘의 시
June 28, 2025
유선혜 <어떤 마음을 가진 공룡이> 죄를 지은 공룡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박물관의 입구에는 오래된 공룡 뼈가 목을 빼고 서 있다 나는 거대한 얼굴 앞에서 잠시 멈추고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2025.06.27 오늘의 시
June 27, 2025
이세실 <덤> 낮에는 날이 좋았는데 오후가 되니 구름이 꼈습니다 궂은 날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무더운 날 나는 재가 됩니다 남겨진 것은 빈 깡통 속에 아침에 내가 피운 담배꽁초 두 개와 오후에 내가 피운 담배꽁초 세 개입니다 꽃병에 꽂아놓은 거베라가 시들었습니다 대가 꺾이고...
2025.06.26 오늘의 시
June 26, 2025
여세실 <서식> 이 심해를 거꾸로 뒤집어 흔드는 손이 있을 것 같아 바위 같은 몸 눈과 귀가 사라진 몸 그것이 진화인지 퇴화인지 알 수 없을 때에도 뜯겨나간 비늘이 물속에서 부유한다 형광빛의 꼬리 비늘이 모래 바닥을 쓸면서 지나가고 있다 통째로 쥐고 흔들다가 다시 엎어놓으면 바닥에...
2025.06.25 오늘의 시
June 25, 2025
백은선 <진짜 괴물> 우리는 동그랗게 앉아 눈을 감았다 첫 번째 사람이 입을 열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자 너부터 시작 괴물은 말야 초록색이고 이빨이 아주 커 다음 괴물은 말야 손톱이 길고 냄새가 나 다음 괴물은 말야 밝은 걸 싫어하고 검은 피를 흘려 다음 괴물은...
2025.06.24 오늘의 시
June 24, 2025
최승호 <꿩 발자국>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꿩이 눈밭을 걸어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뚜렷한 족적(足跡)을 위해 어깨에 힘을 주면서 발자국 찍기에 몰두한 것도 아니리라 꿩조차 제 흔적을 넘어서 날아간다 저자의 죽음이란 흔적들로부터의 날아오름이다
2025.06.23 오늘의 시
June 23, 2025
박소란 <감상>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돌진하였네 내 너머의 빛을 향해 나는 조용히 나동그라지고 한 사람이 내 쪽으로 비질을 하였네 아무렇게나 구겨진 과자봉지처럼 내 모두가 쓸려갈 것 같았네 그러나 어디로도 나는 가지 못했네 골목에는 금세 굳고 짙은 어스름이 내려앉아 리코더를 부는...
2025.06.22 오늘의 시
June 22, 2025
양안다 <if we live together> 외출했을 때 사방으로 건물들이 붕괴되어 있었다 징조도 없이 네가 물병을 엎질렀을 때 사실 나는 전부 쏟아지길 바랐지만 어느 노인이 무너진 자재를 쓰다듬고 있었다 눈먼 자식을 오래 어루만지듯이 숨을 몰아쉴 때면 마음 어딘가를 바늘로 깊게...
2025.06.20 오늘의 시
June 21, 2025
유안진 <꽃 지는 날에> 열매 맺기 위해서 꽃은 떨어져야 한다 된서리를 맞아야 열매 또한 무르익음을 이 확실한 자연법칙을 믿으며 인간 세상 눈비 속을.
2025.06.19 오늘의 시
June 19, 2025
황유원 <아이스크림의 황제 ―제이크 레빈에게> 나는 배스킨라빈스에 절대 가지 않지만 오늘 문자로 도착한 KT멤버십 생일쿠폰에 배스킨라빈스 4천원 할인권이 포함된 것을 보고 오랜만에 배스킨라빈스나 한번 가볼까 하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처럼 작은 동네에도 있는 배스킨라빈스 너 반월 왔을...
2025.06.18 오늘의 시
June 18, 2025
한은별 <바닐라 라떼> 라떼는 말이죠. 매주 금요일마다 티비 앞에 앉아 뮤직뱅크를 보고는 했어요. 라떼는 말이죠. 순위권에 오른 모든 노래와 가수들을 줄줄이 외웠어요. 라떼는 말이죠. 학교 끝나고 친구랑 1시간에 만원하는 노래방을 가서 그 노래들을 다 따라 불렀어요. 누구랑...
2025.06.17 오늘의 시
June 17, 2025
강우근 <하루 종일 궁금한 양초> 하나의 불이 꺼질 때 나의 영혼이 어디로 옮겨 가는지 궁금해 내가 희미해질 때 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은 전부 검게 물들어가는지 내가 사라질 때 또다른 빛을 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얼마나 생생할까 어디선가 달리고 있을 아이들은 모래알처럼 빛이...
2025.06.16 오늘의 시
June 16, 2025
정끝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2025.06.15 오늘의 시
June 15, 2025
이문재 <거미줄> 거미로 하여금 저 거미줄을 만들게 하는 힘은 그리움이다 거미로 하여금 거미줄을 몸 밖 바람의 갈피 속으로 내밀게 하는 힘은 이미 기다림을 넘어선 미움이다 하지만 그 증오는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어서 고요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팽팽하지 않은 기다림은 벌써 그...
2025.06.14 오늘의 시
June 14, 2025
이윤학 <첫사랑>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까지 들여다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까지
2025.06.13 오늘의 시
June 13, 2025
박준 <꾀병>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 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래 지내는 길이라고...
2025.06.12 오늘의 시
June 12, 2025
성동혁 <6> 발가벗겨도 창피하지 않은 방에서 나의 지루한 등을 상상한다 사내들이 아이의 배를 때리는데 여전히 아이가 죽는다 마스크를 오래 보고 있으면 마스크 뒤의 얼굴 그 얼굴 안의 얼굴 보인다 친구가 없는데 친구 목소리가 들리는 방 대답하지 않는데 손뼉 치는 방 낮과 밤이 없는...
2025.06.11 오늘의 시
June 11, 2025
서안나 <러시안룰렛 하는 밤> 난 날마다 내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죠. 담배 한 대 피우면서 한 게임 하실 까요? 물론 저녁 식사 값은 죽은 사람의 몫이죠. 어때요. 같이 한 번 해보실래요? 방아쇠가 당겨질 때 손가락 끝에 죽음이 담배연기처럼 감겨오죠. 피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2025.06.10 오늘의 시
June 10, 2025
이병률 <바람의 사생활> 가을은 차고 물도 차다 둥글고 가혹한 방 여기저기를 떠돌던 내 그림자가 어기적어기적 나뭇잎을 뜯어먹고 한숨을 내쉬었던 순간 그 순간 사내라는 말도 생겼을까 저 먼 옛날 오래전 오늘 사내라는 말이 솟구친 자리에 서럽고 끝이 무딘 고드름은 매달렸을까 슬픔으로...
2025.06.09 오늘의 시
June 9, 2025
진은영 <어쩌자고> 밤은 타로카드 뒷장처럼 겹겹이 펼쳐지는지. 푸른 물 위에 다알리아 꽃잎들이 맴도는지. 어쩌자고 벽이 열려 있다는데 문에 자꾸 부딪치는지. 사과파이의 뜨거운 시럽이 흐르는지, 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지. 유리공장에서 한 번도 켜지지 않은 전구들이 부서지는지....
2025.06.08 오늘의 시
June 8, 2025
나태주 <기쁨> 난초 화분의 휘어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른다.
2025.06.07 오늘의 시
June 7, 2025
김경미 <기다림은 추한 것> 구름들 모였다 금방 흩어지고 다음엔 심지어 비켜간다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면 모든 게 산뜻하고 선명해진다 오래전, 당연한 모임을 들떠서 기다리던 친구에게 말해버렸다 너 빼고 이미 모였었어 너 기다리는 거 안타까워서 말해주는 거야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2025.06.06 오늘의 시
June 6, 2025
이향 <새벽미사> 급하게 늙어버린 손, 우물쭈물대다 여기까지 와버린 듯 하다 아기 손등이었을, 엄마 젖가슴이나 찾았을 손이 그늘을 걷어내느라 물기를 다 빨렸다 얼굴이 웃을 때 그 아래 하염없이 주저앉았을 손 어둠은 고스란히 남아 새벽을 꼭 붙잡고 있다
2025.06.05 오늘의 시
June 5, 2025
나태주 <장마> 하늘이여 하늘이여 하늘이시여억수로 비 쏟아져 땅을 휩쓸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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