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4 오늘의 산문
김이듬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 <네가 원하는 건 이 상자 안에 있어> 中
퇴근하려고 책상을 닦고 있는데 한 사람이 황급히 들어왔다. 뒤를 이어 들어온 사람은 커다란 배낭을 멘 채 쿠키 상자를 들고 있었다. “아직 안 마쳤죠? 책 좀 살 수 있을까요?” 앞서 들어온 여자가 시집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녀는 시집 세 권을 뽑아 들고 뒤따라온 남자에게 돈을 내라고 했다. 남자는 종일 떨었더니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품에 안고 있던 알루미늄 쿠키 상자 같은 걸 무릎 사이에 끼웠다. 기침을 하며 상자를 이쪽저쪽 돌리다가 겨우 열어서는 현금을 꺼내어 세었다.
그들은 젊은 부부로 꽃 장사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렀다고 했다. 낮에 잠시 갔던 그 화훼 전시 판매장의 한 군데에서 간이 천막을 치고 식물을 팔고 있다고 했다. 오늘 장사하고 번 돈으로 시집을 사서 행복하다며 여자가 웃었다. 남자는 여자의 말에 귀 기울이곤 서가 쪽으로 몇 발자국 가서 소설책 한 권을 꺼냈다. 상자 안에는 이제 천 원짜리 몇 장과 먼지, 동전들이 남아 있었다.
이처럼 아끼며 간직했던 많은 것을 내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신이 해변에서 손가락으로 그려준 상자 안에 세상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나는 문 앞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밤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Don't miss what's next. Subscribe to 靈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