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8 오늘의 시
이동호 <사과>
이것은 둥근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동그란 주머니에 주사기처럼
사과 꼭지를 푹 찔러 넣어
두어 계절 동안 천천히 생각을 주입시켰다
나뭇가지 곳곳에 매달아 놓은 머리들이
좀 더 굵고 단단해졌다
더욱 단단하게 뭉쳐 놓은 저 둥근 생각들
사과나무는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마을이 보이는 산 중턱에 앉아
한 가지 생각에만 골똘했다
오직 완벽하게 둥글어지는 것
묵언 정진하는 수도승처럼
깊고 무거워진 생각이
나뭇가지를 아래로 쭉 잡아당기고 있다
지구를 향해 축 늘어진 생각은 사유가 되고,
사과밭 주인은 그런 사과를 위해
봉지를 씌워주었다
혼자 조용히 생각할 방을 만들어 준 것이다
찬 서리가 내리던 날
드디어 사유는 색깔이 되었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에만 매달린 결과다
오랜만에 과수원 주인이 다시 찾아왔을 때,
사과는 사상을 궁구한 철학자 같았다
봉지를 들추자 둥근 생각에도
제법 붉은 색이 돌았다
사과들이 진리를 조금 깨우친 것 같았다
생각 하나를 따서 한입 베어 물자
생각들에 단맛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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