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1 오늘의 시
류시화 <나보다 오래 살 내 옷에게>
어떻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나를 먼저 떠나 보내는 슬픔을 못 이겨
힘없이 늘어진 너의 두 팔과
꺾인 두 다리
아침마다 너의 빈 곳을 채워 주던
살의 온기와 뼈의 무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으로
감정의 습기로 눅눅해진 너의 소매며
누가 나의 돌연한 부재를 너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내가 다시는 너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진실을
이제는 먼지로 돌아간 심장을 껴안듯
가슴을 가로질러 두 팔 접힌
나의 추운 계절의 벗 스웨터
내 안의 길들여지기 싫어하던 동물과
불티 같은 정신을 감싸 주던
면으로 짠 허술한 갑옷
감정이입하듯 발의 냉기를 녹일 수 없게 된 양말이며
너는 이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존재함의 의미를 잃었다
수많은 옷들이 거리를 활보하지만
너를 데리고 다닐 몸이 부재함으로
빛조차 스미지 않는 어두운 옷장 안에서
고독과 한몸이 되어야 한다
그만한 상실이 정오의 시간 어디에 또 있을까
너와 나는 똑같이 사람의 형상으로
이 별에서의 삶을 경험했다
이제 나는 너를 벗고 온전한 알몸으로
긴 외출을 떠나려 한다
얼마나 자주 너를 벗어 던지고 싶었는지
마치 그것이 이 운명을 벗는
상징이라도 되는 듯이
집착을 떼어 내는 몸짓이라도 되는 듯이
나보다 수명이 긴 나의 옷이여
새벽별이 소매 속으로 떨어지던 옷이여
한때 나를 타인과 분리해 준 너
의자 등받이에서 말없이 나를 안아 주던 너
이제 아무도 나 대신 너에게 포근하게 팔을 끼지 않으리
다정한 허리 동여맴은 앞으로 없으리
내가 너를 입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행복과
실도 꿰지 않은 바늘로 뜯어진
감정의 솔기를 꿰매던 나를
너만은 기억하리
너를 두고 떠나는 나 역시 마음이 아프다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
바람이 옷장 문을 열면 너도 수고로운 생 마치고
얽매임의 날실과 씨실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날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