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0 오늘의 시
김명은 <검은 정장과 회색 뱀 무늬 스타킹>
누워 있어도 기어다니는 뱀 같아
발 빠른 누군가 뱀으로 오인하고 무차별 때려죽일까
다리 굵기의 뱀이야 많으니
눈을 치켜뜨면 뱀 눈이야
검은 머리와 다리가 두 개인 뱀
두 개의 발끝에서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뱀
그런데 입은 뱀 가죽 벗겨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영영 바닥을 기어다녀야 하나 몰라
나뭇가지를 휘감고 서 있어야 하려나
뱀 가죽과 뱃가죽이 달라붙은 냉혈동물
뱀 노릇을 해야 한다면
스타킹 신고 뱀을 파고들다 보면 길이 보일까
다리에 걸려 구불구불 허우적거리는 길들
허물 벗고 깎고 키우고 높이고 끌어올리고 바꿔버린
얼굴에서 피가 독물처럼 줄줄 흘러내렸을 텐데
얼마나 독해져야 빼어난 미모로 몰라보려나
예쁘지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에게 뱀 가죽 가방을 가져다줘
머리통에 뱀 모양 목걸이를 둘둘 꼬리에 반지를 끼워줄까
뱀은 뱀이라서 목을 향해 길을 따라 구불거리고
쭉 뻗은 뱀 무늬 스타킹이 추락을 향해 뛰어간다 뛰어가
물렀거라 멈췄거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뛴다, 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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