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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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4 오늘의 시
May 4, 2025
박시하 <일요일> 차가운 유리병 속에서 내 취미는 영원히 무릎을 꿇는 것 슬퍼지기 위해서 이별하는 연인들처럼 증거도 없이 믿었다 “너는 슬픈 시를 쓰는구나. 슬픔이 시가 되었으니 안 슬퍼야 할 텐데. 시가 된 슬픔은 어느 다른 나라로 잠시 여행을 간 거야. 어느 날 건강히...
2025.05.03 오늘의 시
May 3, 2025
박시하 <길 위에서> 흔히 안개에 덮인다 사라질 나를 사라질 네가 안는 일이다 나이면서도 너이다 멀리 있거나 매우 가깝다 음악처럼 걸음을 연주한다 각자의 리듬을 껴안고 발이 문득 빛나다가 꺼진다 걸었으니까 신발이 닳았으니까 안개가 울려 퍼진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가끔은 술잔이...
2025.05.02 오늘의 시
May 2, 2025
박준 <미아> 사람들에게 휩쓸려 잡고 있던 손은 놓치고 가방까지 어딘가에 흘리고 그렇게 서로를 잃어버렸을 때 다른 곳으로 가면 돼 안 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처음 든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해 네가 나를 찾을 필요는 없어 내가 너를 찾을 거야
2025.05.01 오늘의 시
May 1, 2025
박준 <다시 공터> 네가 두고 간 말을 아직 가지고 있어 어디에 쓰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버릴 수 있었을 까 그러니 마냥 넣어두고 다녔지 작은 열쇠처럼 가끔 잘 있나 꺼내보았다가도 이내 다시 깊숙이 넣어두고 혼자 있게 했지
2025.04.30 오늘의 시
April 30, 2025
백향옥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 부풀어오르는 흙이 좋아 맨발로 숲을 걸었다 바닷물에 발을 씻다가 만난 돌은 손바닥에 꼭 맞는 매끄러운 초승달 모양 열병을 앓을 때 이마를 짚어주던 당신의 찬 손 분주하게 손을 닦던 앞치마에 묻어 온 불 냄새, 바람 냄새, 놀란 목소리 곁에...
2025.04.29 오늘의 시
April 29, 2025
장희수 <사력>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집에선 손에서 놓친 휴지가 바닥을 돌돌 굴렀다 무언가 멀어져가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어떤 마음은 짠맛을 욱여가며 삼키는 일 같았다 그중 가장 영양가 없는 것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본 적 있다 ...
2025.04.28 오늘의 시
April 28, 2025
한백양 <웰빙> 힘들다는 걸 들켰을 때 고추를 찧는 방망이처럼 눈가의 벌건 자국을 휘두르는 편이다 너무 좋은 옷은 사지 말 것 부모의 당부가 이해될 무렵임에도 나는 부모가 되질 못하고 점집이 된 동네 카페에선 어깨를 굽히고 다니란 말을 듣는다 네 어깨에 누가 앉게 하지 말고 그러나...
2025.04.27 오늘의 시
April 27, 2025
한백약 <왼편> 집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다 오랫동안 빌라를 떠나지 못한 가족들이 한 번씩 크게 싸우곤 한다 너는 왜 그래. 나는 그래. 오가는 말의 흔들림이 현관에 쌓일 때마다 나는 불면증을 지형적인 질병으로 그 가족들을 왼손처럼 서투른 것으로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2025.04.26 오늘의 시
April 26, 2025
이근석 <여름의 돌> 나는 토끼처럼 웅크리고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난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형은 여기...
2025.04.25 오늘의 시
April 25, 2025
안수현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윗집은 오늘도 많이 더운가 보다 아무렇게나 잘라두어 우리 집 창문에 아른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시끄럽다면서도 마른 토마토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둔다 새순 발끝을 받치고 있는 큰 줄기 손끝이 새파랗다 너를...
2025.04.24 오늘의 시
April 24, 2025
김도은 <적당한 힘> 새를 쥐어 보았습니까? 새를 쥐고 있으면 이 적당한 힘을 배우려 학교엘 다녔고 친구와 다퉜고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온갖 소리를 가늠하려 했었던 일을 이해하게 됩니다 온기는 왜 부서지지 않을까. 여러 개의 복숭아가 요일마다 떨어지고 떨어진 것들은...
2025.04.23 오늘의 시
April 23, 2025
박규현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 친애하는 메리에게 나는 아직입니다 여기 있어요 불연속적으로 눈이 흩날립니다 눈송이는 무를 수도 없이 여기저기 가 닿고요 파쇄기 속으로 종이를 밀어 넣으면 발치에 쌓이던 희디 흰 가루들 털어도 털어도 손가락은 여전합니다 사람을 만들 수도 있을 것...
2025.04.22 오늘의 시
April 22, 2025
김진환 <길 찾기> 차창 너머 낯선 가게들잠시 눈감은 사이에내릴 정류장을 지나쳤나인터넷 지도로 확인한다버스의 노선과 파란 점의 위치를 나는 길 잃지 않았다인터넷 지도에 따르면이 길은 내가 아는 길매일같이 지나는 왕복4차로 거기서 나는 흰색과 붉은색 보도블록의 배열을 배웠고넘어져...
2025.04.21 오늘의 시
April 21, 2025
백아온 <디스토피아> 플라스틱 인간을 사랑했다. 손등을 두드리면 가벼운 소리가 나는.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자기가 피우는 카멜 담배의 낙타가 원래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다거나 레몬청을 시지 않게 만드는 법 같은 것들을 말해줬다. 나는 그의 말들을...
2025.04.20 오늘의 시
April 20, 2025
강우근 <단순하지 않은 마음>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눈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2025.04.19 오늘의 시
April 19, 2025
신이인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오리너구리를 아십니까?오리너구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아에게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듯강의 동쪽을 강동이라 부르고 누에 치던 방을 잠실이라 부르는 것처럼 나를 위하여 내가 하는 일은밖과 안을 기우는 것, 몸을 실낱으로 풀어, 헤어지려는 세계를...
2025.04.18 오늘의 시
April 18, 2025
박준 <겨울비> 비는 당신 없이 처음 내리고 손에는 어둠 주름인지 모를 너울이 지는 밤입니다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광장으로 마음 곧잘 나섰지만 약을 먹기 위해 물을 끓이는 일이 오늘을 보내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한결 나아진 것 같은 귓병에 안도하는 일은...
2025.04.17 오늘의 시
April 17, 2025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눈이 작은 일도눈물이 많은 일도자랑이 되지 않는다하지만 작은 눈에서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나는 이제철봉에 매달리지...
2025.04.16 오늘의 시
April 16, 2025
안녕하세요. 영우지기, 은별입니다. 저는 2014년 4월 16일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 날 제가 무엇을 했고, 봤고, 또 들었는지 어제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저 기억하기를 약속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여러분들께 보내드립니다. 이재무 <약속> 자주자주 하늘을...
2025.04.15 오늘의 시
April 15, 2025
한강 <서시>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나에게 말을 붙이고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오래 있을거야.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 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잘 모르겠어.당신, 가끔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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