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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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3 오늘의 시
July 13, 2025
이향이 <첫사랑> 아직도 꽃으로 피어있다 차마 사랑이라고 이름 지을 수 없었던 그 첫사랑이 수십 년의 나이를 먹은 후에도 미처 못 본 속 마음과 하루 삼시세끼, 매달 생활비 걱정을 나누어 보지 못한 산다는 궂은일로 부대껴 보지 못한 그래서인지 항상 꽃처럼 아름답다 한 번도 남자...
2025.07.12 오늘의 시
July 12, 2025
安與峻 <四季> 누군가 나에게 청춘을 물어봤을 때, 나는 청춘이 그저 지나간 시간이라 답하였다. 누군가 다시 나에게 청춘을 물어봤을 때, 나는 청춘이 그저 현재를 살아가는 원동력이라 답하였다. 푸를 청(靑), 봄 춘(春). 그 무엇보다 푸르고 눈부신 봄이거늘, 그 푸르른 계절 속을...
2025.07.11 오늘의 시
July 11, 2025
윤석구 <첫눈에 반하다> 첫눈에 반하는 것은 눈빛이 스파크처럼 부딪쳐 가슴에 와 닿는 황홀한 순간이다 짝사랑이 그랬고 첫사랑이 그랬다 짝사랑은 아파도 좋았다 혼자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그러나 잊지 못할 추억으로는 남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첫눈이 되었을 텐데 그가 누군지 모른다...
2025.07.09 오늘의 시
July 9, 2025
나태주 <사는 법>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2025.07.08 오늘의 시
July 8, 2025
유선혜 <흑백 방의 메리> 우리는 새집으로 이사 올 때 빨간 화분 하나를 샀다. 그 식물의 원래 이름은 알 수 없었고 메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잎이 무성하지는 않았다. 메리 메리 부르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고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창가에 메리가 있었다. 빛이 메리를...
2025.07.07 오늘의 시
July 7, 2025
서안나 <늦게 도착하는 사람-상사화相思花> 꽃은 과거와 미래의 나의 사랑을 증명한다 내가 지상에서 사라질 때 당신은 꽃이란 이름으로 당신에게 도착한다 없는 나는, 있는 당신을 향해 손을 내민다 당신에게 내미는 나는 이미 지워진 손 그러니까 나는 많이 낡았고 뿌리와 줄기의 초록은...
2025.07.06 오늘의 시
July 6, 2025
박은지 <정말 먼 곳> 멀다를 비싸다로 이해하곤 했다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 먼 곳으로 떠나기도 했지만 정말 먼 곳은 상상도 어려웠다 그 절벽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어서 언제 사라질지 몰라 빨리 가 봐야 해 정말 먼 곳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었다 돌이 떨어지고 흙이...
2025.07.04 오늘의 시
July 4, 2025
박준 <종암동>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2025.07.03 오늘의 시
July 3, 2025
황유원 <여몽환포영> 죽어도 된다 우린 그날 저승처럼 컴컴한 해변에 앉아 있다가 안전요원들의 눈을 피해 하나둘 밤바다로 뛰어들었지 안전하지 않아도 된다 파도 소리의 저음에 경박한 호루라기 소리 섞어주며 우린 밤새 속초의 밤바다 잠들지 않게 했지 사실 난 죽을까 봐 좀 무서워서...
2025.07.02 오늘의 시
July 2, 2025
서안나 <전생(前生)을 생각하다> 책상서랍을 정리하다보면 책상의 前生이 보인다 책상표면에 매끄럽게 그려진 결마다뿌리와 가지의 힘이 모여 있다나이테로 몰려든 경계와 경계를 넘나들던 힘들이물을 빨아올리던 뿌리의 힘들이나무의 옹이를 향해 제 몸을 둥글게 구부려가며단단한 우주를 만들고...
2025.07.01 오늘의 시
July 1, 2025
김경희 <여름방학의 노래> 찬란한 비바체의 서울은 공룡에게 맡기고 높이 멀리 달리기의 명문학교도 잠시 안녕 하고 특종당나귀 소나타는 하늘 너머 드롭프스로 바꿔 태양에 단맛이나 찐득이 보태드리고 흙이 그대로 신발인 떡두꺼비 맨발로 안단테에서 더 렌토로 지자 걸음~ 뚱딴지가 알 굵게...
2025.06.30 오늘의 시
June 30, 2025
안희연 <파트너> 너의 머리를 잠시 빌리기로 하자 개에게는 개의 머리가 필요하고 물고기에게는 물고기의 머리가 필요하듯이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오더라도 놀라지 않기로 하자 정면을 보는 것과 정면으로 보는 것 거울은 파편으로 대항한다 잠에서 깨어나면 어김없이 멀리 와 있어서...
2025.06.29 오늘의 시
June 29, 2025
안희연 <밤가위> 가위는 가로지르는 도구다. 가위는 하나였던 세계를 둘로 나누고 영원한 밤의 골짜기를 만들고 한 사람을 절벽에 세워두고 목소리를 듣게 한다. 발아래, 당신의 발아래 내가 있으니 그냥 돌아가지 말아요. 절벽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가위는 있다. 그는 밤 가위로...
2025.06.28 오늘의 시
June 28, 2025
유선혜 <어떤 마음을 가진 공룡이> 죄를 지은 공룡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박물관의 입구에는 오래된 공룡 뼈가 목을 빼고 서 있다 나는 거대한 얼굴 앞에서 잠시 멈추고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2025.06.27 오늘의 시
June 27, 2025
이세실 <덤> 낮에는 날이 좋았는데 오후가 되니 구름이 꼈습니다 궂은 날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무더운 날 나는 재가 됩니다 남겨진 것은 빈 깡통 속에 아침에 내가 피운 담배꽁초 두 개와 오후에 내가 피운 담배꽁초 세 개입니다 꽃병에 꽂아놓은 거베라가 시들었습니다 대가 꺾이고...
2025.06.26 오늘의 시
June 26, 2025
여세실 <서식> 이 심해를 거꾸로 뒤집어 흔드는 손이 있을 것 같아 바위 같은 몸 눈과 귀가 사라진 몸 그것이 진화인지 퇴화인지 알 수 없을 때에도 뜯겨나간 비늘이 물속에서 부유한다 형광빛의 꼬리 비늘이 모래 바닥을 쓸면서 지나가고 있다 통째로 쥐고 흔들다가 다시 엎어놓으면 바닥에...
2025.06.25 오늘의 시
June 25, 2025
백은선 <진짜 괴물> 우리는 동그랗게 앉아 눈을 감았다 첫 번째 사람이 입을 열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자 너부터 시작 괴물은 말야 초록색이고 이빨이 아주 커 다음 괴물은 말야 손톱이 길고 냄새가 나 다음 괴물은 말야 밝은 걸 싫어하고 검은 피를 흘려 다음 괴물은...
2025.06.24 오늘의 시
June 24, 2025
최승호 <꿩 발자국>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꿩이 눈밭을 걸어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뚜렷한 족적(足跡)을 위해 어깨에 힘을 주면서 발자국 찍기에 몰두한 것도 아니리라 꿩조차 제 흔적을 넘어서 날아간다 저자의 죽음이란 흔적들로부터의 날아오름이다
2025.06.23 오늘의 시
June 23, 2025
박소란 <감상>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돌진하였네 내 너머의 빛을 향해 나는 조용히 나동그라지고 한 사람이 내 쪽으로 비질을 하였네 아무렇게나 구겨진 과자봉지처럼 내 모두가 쓸려갈 것 같았네 그러나 어디로도 나는 가지 못했네 골목에는 금세 굳고 짙은 어스름이 내려앉아 리코더를 부는...
2025.06.22 오늘의 시
June 22, 2025
양안다 <if we live together> 외출했을 때 사방으로 건물들이 붕괴되어 있었다 징조도 없이 네가 물병을 엎질렀을 때 사실 나는 전부 쏟아지길 바랐지만 어느 노인이 무너진 자재를 쓰다듬고 있었다 눈먼 자식을 오래 어루만지듯이 숨을 몰아쉴 때면 마음 어딘가를 바늘로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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