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4 오늘의 시
한은별 <까마귀 pt. 2>
어느날 당신을 마주쳤어요.
유리가 반짝거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날카롭지 않은
상처 주지 않는
부드럽고
따뜻하게
스스로 빛나는 사람.
어떻게든 당신에게 잘 보이겠다고
유리 조각을 모아 뭐라도 만들어 보긴 했는데
아, 소주병이었군요. 맥주병이었던가요?
다른 걸 만들어 볼까도 해봤지만
내가 모은 조각들은 하나같이 예쁘지 않아.
이걸로는 무엇을 만들어 당신께 드려도
죄다 쓰레기통으로 가게 생겼어요.
버려야 할 건 버리고
나름, 그나마, 어찌저찌 예쁜 걸 남겨두고
색깔별로, 또 모양별로 정리라는 것도 해봤지만
가장 날카로운 파편들은
애당초 뱉어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람인지 까마귀인지도 모를 나 자신을 원망해 봅니다.
빛나는 당신을
조금만 나눠주시겠어요.
그러면 나
오래도록 물고 있던 이 형편없음을 뱉고
당신의 언어를 입에 물고
당신의 시간 속에서
당신의 눈빛을 모으며
그렇게
하염없이 흘러감을 멈추고
당신 옆에 머무를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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