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5 오늘의 시
정호승 <흙탕물>
흙탕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도도히 계곡을 휩쓸고 지나가던 여름날의 흙탕물이
고요해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흙탕물이 맑아지려면 내가 먼저 맑아져야 하고
묵상의 바닥에 고요히 무릎을 꿇어야 하므로
흙탕물에 새벽별이 뜨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흙탕물이 흙탕물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
내 일찍 당신과 만나 한 몸을 이루었듯
흙탕물도 흙과 물이 만나 한 몸을 이루어
서로 사랑하고 미워했을 뿐
흙은 물을 만나 더러운 흙이 되는 게 아니다
물은 흙을 만나 흐린 물이 되는 게 아니다
흙탕물이 튀어서 내 마음이 더러워진 적은 없다
한때는 분노와 증오의 붉은 흙탕물이 되어
내가 썩어간다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흙탕물이 흙탕물 그대로 있는 게 아름답다
모내기를 끝낸 저 무논을 보라
물은 흙탕물이 될 때 비로소 흙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흙은 흙탕물이 될 때 비로소 물에서 모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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