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1 오늘의 산문
짐송 [이것도 책인가요?] 中 <컴맹이어도 잡지를 내고 싶어>
나는 컴맹이었고, 컴맹이며, 컴맹일 것이다. 잡지를 만들겠다고 야심차게 컴퓨터 학원까지 등록,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 코스를 끊었지만 곧 알게 되었다. 무를 배 모양으로 깎아놓는다고 해서 배맛이 나지는 않으며, 나는 디자인 감각이나 컴퓨터 활용 능력에서는 순무라는 사실을. 학원에서는 나를 배 모양으로 다듬어주려고 애 썼고, 나 역시 한겨울에 아침 9시 포토샵 속성 코스에 꼬박꼬박 출석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한글 2010의 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농약 같은 프로그램.
잡지를 보여주자 컴퓨터 학원 선생님의 눈가에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 잡지의 만듦새가 그와 같은 전공자에게 어떤 시각적 고통을 선사하는지. 나는 순무였기 때문에, 배의 고통 같은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긴 수치가 뭔지 알았다면 감히 선생님에게 잡지를 보여주며 자랑하지 못했겠지.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에게는 너무나 좌절스러운 결과였을 것 같다. 미안합니다. 선생님…당신은 프로였으며 부지런하고 다정다감했습니다. 다만 상대가 천하제일 똥손이라는 불운에 부딪혔을 뿐.
그 떨림은 학원을 그만둔 후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디자인 전공자(나의 친언니라거나) 혹은 미적 감각이 상식 수준에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서.
사실 한글도 잘 못 쓴다. 그냥 쓰는 거다. 한글 능력자가 나의 작업을 보면 뒷목 잡고 넘어갈 거라는데 내 미래의 남편을 건다.
아무 것도 안 건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