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2 오늘의 시
황유원 <가을 물고기>
너는 추어탕의 추어가
가을 물고기냐고 했다
나는 아마 ‘미꾸라지 추’자에
‘물고기 어’ 변이 달렸을 거라며 말끝을 흐렸는데
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추어는 가을 물고기가 맞는 것도 같았고
해 지는 가을의 쓸쓸한 논두렁 아래를
어슬렁어슬렁 헤엄치는 미꾸라지가 떠오르기도 해서
갑자기 나까지 쓸쓸해지는 것이다
지도 교수님과 어느 선배랑 가끔 가던 동대 쪽문 쪽 추어탕집
거기서 추어탕에 소주 먹고 나와 둘이 피우던 담배 연기가
눈앞에 피어오르는 것이다
나는 다라이에 가득 담긴 미꾸라지를 보며
어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므로
사랑 같은 소리는 다 개소리라고 생각하며
선배에게 끊었던 담배 한 대 빌려서 함께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그날 점심때 소주를 한 병은 마셨던 것 같고
나는 지도 교수님을 좋아했는데
결국 내가 모든 걸 망쳐버린 것 같고
다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날의 풍경은
내 마음속에서 이렇게 영원히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꺼지지 않는 담배 연기처럼
비워지지 않는 소주병처럼
나는 추어탕에는 역시 소주지라고 말했고
너는 다라이에 담긴 미꾸라지를 본 기억 때문에
추어탕을 잘 못 먹는다고 말했다
나는 가을 물고기가 다라이 속에서 가을과 함께
저물어간다고 말했고
이 모든 것과 무관하게
나는 지금 혼자 김오키의 라이브 영상을 틀어놓고
네가 마켓컬리로 주문해준 추어탕에 없는 소주 대신 장수막걸리를 먹고 있는데
장수막걸리는 교수님이 가장 자주 드시던 술이었는데
나는 다라이에 담겨 저물어가는 한 마리 미꾸라지가 된 심정으로
오늘 아침 너와의 대화를 떠올리는 것이다
대화 속을 헤엄치던 가을 물고기를 잡아보는 것이다
이 슬픔은 장수할 것이다
이 사랑도 장수할 것이고
사랑 따위는 미꾸라지처럼 뼈째 갈려버릴지리도
오늘 이 색소폰 소리는
감미로운 먼지 같고
뼈째 갈려도 기어코 사랑하려는 먼지가
천천히 휘날리는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게 놓인 고무 다라이 위로
불어오는 색소폰 음색은 스산한 가을바람 같았어
몇 가닥 긴 수염 느리게 흔들며
흐린 논두렁 내장 속까지 노을이 스미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