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7 오늘의 시
임지은 <중요하지>
불면증인 사람에겐 베개가 중요하지
높낮이에 따라 꿈의 내용이 달라지기라도 하듯이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지 않고 잤다
꿈을 꾸지 않고 자는
꿈을 꾸었다
꿈속의 내가 너무 부러울 지경이었지
흔들어 깨우고 싶을 만큼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에겐 높이가 중요하지
층수에 따라 목적지가 없어지기라도 하듯이
백팔 계단을 올라가면
번뇌가 사라진다
그런데 꼭 한두 개가
모자라서 인생은 번뇌에 휩싸이지
그러나 올라가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것 또한
달리는 자전거에게 바퀴는 중요하지
모난 정도에 따라
방향이 바뀌기라도 하듯이
인생은 삼세번이라는 세모 바퀴와
내가 서 있는 곳이 가려는 곳이라는 네모 바퀴
영영 조율되지 않는 앞바퀴와
뒷바퀴의 불일치까지
쓰고 있는 사람에게 펜은 중요하지
심의 굵기에 따라 글이 자라기라도 하듯이
잡은 것이 마음이거나
손가락이거나
좆이거나 상관없이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르고
다 자란 소년은 이제 더는 부모를 찾지 않는데
죽음에게 수명은 중요하지
오래 살면 천수를 누리기라도 했듯이
제사를 지내요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닭을 삶고 조기를 찌고 과일을 깎고 절을 해요
하기 싫어도 해요
하던 대로 해요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게
그것이 죽음의 유일한 생존 방법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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