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7 오늘의 시
한여진 <파크맨션>
삶의 등불을 켜주는 이는 죽은자들이다
―크리스티앙 보뱅
커다란 꾸러미를 들고 나는 그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오래된 약속이 있었지…
허리가 아프다
꾸러미에 뭐가 들었더라
기억이 나질 않아…
아이들이 왁자지껄 파크맨션에서 튀어나오고
그때 다정한 사람처럼 보이려 윙크를 했었나
얘, 넌 사람이 아니잖아
가장 작은 아이가 말한다
아이에겐 아이만의 삶이 있고
파크맨션은 5층짜리 건물이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한 층씩 올라가기
그리고 다시 밑으로 한 층씩 내려가기
나는 시간이 아주 많으니까
그리고 때가 되어 돌아온 아이는 여섯 아닌 일곱
함께 놀고 싶은 누군가가 몰래 끼어든다
계단을 뛰어올라 어느 집에 모인
우리들은 서랍을 뒤져 과자를 먹어치우고
자개장롱 속에 들어가 잠을 잔다
가만히 장롱 문을 닫아주려는데
너는 언제 죽었어,
꿈꾸는 목소리로 여섯 번째 아이가 묻는다
엊그제였나… 아니 삼천년 전인 것 같기도 한데…
그저 너희들과 놀아보고 싶었을 뿐이야…
꾸러미가 꿈틀거린다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너는 그것을 여섯 번째 아이에게 넘기고
조용히 파크맨션을 떠난다
곧 작은 소동이 일어나도
그건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Don't miss what's next. Subscribe to 靈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