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8 오늘의 소설
김화진 [공룡의 이동 경로] 中
나는 이제껏 살아오며 기억을 지우고 싶다, 그 일이 있기 전으로, 그런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딱히 원하는 것이 없던 만큼 지우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크게 아파보거나 잃어본 적이 없는 것, 바라는 것도 소중한 것도 없는 것, 그것은 나의 운이자 약점이었다. 그러나 주희의 일을 목격하고, 하루하루 마음이 바스라져가는 주희를 볼 때면 그 일을 경험하지 않는 쪽으로 시간을 돌리거나 성처받은 순간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을 원하게 되었다. 어떤 것을 의식하기 이전으로. 그런 거라곤 모르던 세계로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주희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주희는 네 삶에서 뭔가 삭제할 수 있다면 뭘 뺄래? 하고 물었을 때 한참을 고민하다가 없다고 대답했다. 동생이 죽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인터넷에 만화를 연재했던 그 일을 지우고 싶지 않고, 그린 만화가 비난과 혹평 속을 지나온 일도 잊거나 삭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게 내 거야. 주희는 말했다. 삶을 편집할 순 없어. 묵묵히 봐야 해. 그것 때문에 나는 지금 아프지만. 한번 아픈 곳이 계속 아플까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 된 거겠지.
아플 때도 주희는 강하기는 했다. 그 사람이 원래 지니고 있던 태도가 아프다고 해서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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