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7 오늘의 시
김개미 <나는 암사마귀처럼>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풀잎에 앉아 있었던 것 같아
오랫동안 여름이었던 것 같아
풀잎처럼 나뭇잎처럼 바람처럼
호흡까지 맥박까지 초록이었던 것 같아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너를 기다렸던 것 같아
너와 헤어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너를 기다렸던 것 같아
아픈 동안에는 더 기다렸던 것 같아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숲에 혼자 있었던 것 같아
한낮이면 햇빛에 녹아 사라지다
저녁이면 바람의 힘으로 단단해지곤 했던 것 같아
눈을 뜨고 있으면 보이지 않고
눈을 감으면 보이는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울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아
이슬을 마시는 것 말고는
할 일을 생각해낼 수 없는 날도 있었던 것 같아
게으르지 않지만 일할 수 없는 날들이
여러 날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너에게 함몰되어 있었던 것 같아
이건 네 이야기지만 너는 모르는 이야기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풀과 나무와 바람만 있는 곳에
네 껍데기를 가져다 놓고 있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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