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1 오늘의 소설
<오렌지빛이랄지> 中 - 이상우 [핌 오렌지빛이랄지]
샨츠는 메일을 읽었다. 짧았고 아마 그래서 울지 않을 수 있었다. 냉장고에 기대 앉아, 하스를 쓰다듬으면서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손깍지에 차오르는 부드러움과 골골거림만이 주위 가득 아주 잠시. 바닥이 미세하게 울려오고 눈높이보다 높이 떠다니는 고양이 털. 지속되는 냉장고 진동, 베단다의 걸레 냄새. 식탁 위에 오렌지. 샨츠는 신체에서 삶이 잘려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피가 흐르듯이 샨츠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어지기도 전에 너무 빠르고 너무 많은 감정들이 흐느끼며 기억과 미래의 틈새에서 멸망하고 있었다. 샨츠는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이 기분이 어쩌면 단순히 생리 탓일지 모른다는 것도 그게 아니어도 아마 잠시만 견뎌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슬픔과 우울의 연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샨츠는 그 이후에 더 존재하고 싶은 의지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샨츠 앞으로 멀쩡히 나타날 모든 미래에 아무 감흥이 없었다. 샨츠는 모든 희망에 미련이 없었고 혹여 모를 행복도 작은 기쁨조차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끝나고 싶었다. 20대에는 막연하고 회피적인 갈망이었으나 이제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이유들로 샨츠는 끝나고 싶었다. 투명하고 깨끗하리만치 그 마음에 의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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