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8 오늘의 시
유선혜 <흑백 방의 메리>
우리는 새집으로 이사 올 때 빨간 화분 하나를 샀다. 그 식물의 원래 이름은 알 수 없었고 메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잎이 무성하지는 않았다. 메리 메리 부르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고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창가에 메리가 있었다. 빛이 메리를 두드리고 메리는 빛을 모두 먹어 치웠다. 물을 주면 잎은 점점 늘어났다.
메리는 평생 좁은 방에 갇혀 흑백의 세상을 보지만 이 세상의 모든 물리적 사실을 아는 천재 과학자입니다.*
너는 언젠가 이런 내용의 논문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너는 자주 일상의 방법을 잊어버리곤 했다. 잘 자라고 문을 닫으며 인사하고, 올바르게 연필을 손에 쥐고, 변기를 사용한 뒤에는 커버를 내리고, 양파를 먹기 좋게 자르고, 양말을 뒤집어놓고, 화분에 물을 주는 그런 방법을.
우리가 이 집에 익숙해질 때쯤
너는 나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커다래진 메리의 잎사귀를 유심히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메리가 우리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메리는 우리의 무채색 목소리를 모두 받아 적고 있었다.
기억을 먹고 메리는 거대해졌다. 균열하는 분위기와 침묵 속에서 천재가 되었다.
물을 주는 일을 멈추고 싶었다.
지금 너는 방으로 돌아오는 그 좁은 골목을 기억하지 못하고
방에는 여전히 빛이 조금 들어오고 있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메리는 그 빛 덕분에 더 오래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빛이 얼굴을 관통한다. 메리는 벌써 창문의 절반 정도를 가리고 있어서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메리 메리
메리 메리, 불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Frank Jackson - What Mary Didn't K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