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Subscribe
Archives
June 27, 2025

2025.06.27 오늘의 시

이세실 <덤>

낮에는 날이 좋았는데

오후가 되니 구름이 꼈습니다

궂은 날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무더운 날

나는 재가 됩니다

남겨진 것은

빈 깡통 속에

아침에 내가 피운 담배꽁초 두 개와

오후에 내가 피운 담배꽁초 세 개입니다

꽃병에 꽂아놓은

거베라가 시들었습니다

대가 꺾이고

잎의 가장자리부터 말려듭니다

바람 부는 날에

꽃이 지는 모양으로

사랑이 오기를

바랐습니다

꽃 보고

햇볕이나 바람을 느끼는 사람과는

친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손을 씻습니다

거품이 먹음직스러웠습니다

손을 털고

손을 털고

성한 데 없이

미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미움은

떨이 같았습니다

내 사랑

내가 말려보려고

망치를 들었다가

눈 깜짝할 사이

누가 가로채 갔습니다

Don't miss what's next. Subscribe to 靈雨:
Powered by Buttondown, the easiest way to start and grow your newsl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