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6 오늘의 시
여세실 <서식>
이 심해를 거꾸로 뒤집어 흔드는 손이 있을 것 같아
바위 같은 몸
눈과 귀가 사라진 몸
그것이 진화인지 퇴화인지 알 수 없을 때에도
뜯겨나간 비늘이 물속에서 부유한다
형광빛의 꼬리
비늘이 모래 바닥을 쓸면서 지나가고 있다
통째로 쥐고 흔들다가 다시 엎어놓으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 모두
휘몰아쳤다가 고요하게
서서히
제자리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
점점 조여오는
사랑에도 편차가 있어
내면에도 발등이 있어
물결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가는
잘 길러진 슬픔도 있어
꿈속에서 우린 숨 쉬는 걸 잊은 채
아주 오랫동안 물속을 헤엄칠 수 있었는데
이후의 선택은
이미 떨어져 나간 비늘들을 먹으며
연명하는
작은 아가미들과
잡식을 하는 심해어들은 순면의 솜처럼
떠오르고 있다
몸통에 달라붙은 온갖 미물들은
부력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
난동을 부리며 물결을 일으켰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도
너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제자리의 제자리를 흔들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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