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5 오늘의 시
백은선 <진짜 괴물>
우리는 동그랗게 앉아 눈을 감았다
첫 번째 사람이 입을 열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자
너부터 시작
괴물은 말야 초록색이고 이빨이 아주 커
다음
괴물은 말야 손톱이 길고 냄새가 나
다음
괴물은 말야 밝은 걸 싫어하고 검은 피를 흘려
다음
괴물은 말야 시끄럽게 기침을 하고 사람을 먹어
다음
괴물은 말야
……
괴물은 말야
……
긴 침묵이 지나고
하나둘씩 눈을 떴을 때
그 애는 울고 있었다
너 왜 울어?
모두가 그 애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흙을 파내려가는 뾰족한 손톱을 생각해 상처 입은 무릎을, 배고파 잠이 오지 않는 매일 밤의 뒤척임을, 빛이 머리를 관통할 때의 저린 통증을 생각해
시간은 약이 아니다 생각에는 마침표가 없기 때문에 빛과 소리는 끝이 없고 단지 이동할 뿐이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 계속되었다
밤은 길고 밤은 영원해서
그치지 않았다
동그랗게 모여 앉은 우리가 기울어질 때
영문도 모른 채
술렁이며 눈물이 번질 때
누구도 다음, 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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