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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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 2025

2025.05.03 오늘의 시

박시하 <길 위에서>

흔히 안개에 덮인다

사라질 나를 사라질 네가 안는 일이다

나이면서도 너이다

 

멀리 있거나 매우 가깝다

음악처럼

걸음을 연주한다

각자의 리듬을 껴안고

발이 문득 빛나다가 꺼진다

걸었으니까 신발이 닳았으니까

안개가 울려 퍼진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가끔은 술잔이 흩날린다

눈이 쌓인다

빗물이 흐르기도 한다

허수아비들이 망연히 서 있다

보폭을 유지하며

흰 나무들이 걷는다

엷게 서러워하는 나무의

빈 얼굴을 만진다

별이 든 가방을 메고

떠남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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