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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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9, 2025

2025.04.29 오늘의 시

장희수 <사력>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집에선

손에서 놓친 휴지가 바닥을 돌돌 굴렀다

무언가 멀어져가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어떤 마음은 짠맛을 욱여가며 삼키는 일 같았다 그중 가장 영양가 없는 것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본 적 있다

​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포기할 수 있었다면

또다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생길 리 없을 테니까

​

할머니도 이제야 뭔들

관두는 법을 배운 거겠지

다 풀린 휴지를 주섬주섬 되감아보면 휴지 한 칸도 아껴 쓰라던 목소리가,

귓등에서 자꾸만 쏟아지는 것 같았는데

​

쏟아지면 쏟아지는 것들을 줍느라

자주 허리가 굽던 사람의 말은

더 돌아오지 않는 거지

죽을힘을 다해본다 해도

사람들은

영정 앞으로 다가와

국화꽃을 떨어트리고 멀어져 간다

정갈하고 하얗게 펼쳐지는

꽃밭처럼,

무언가 떠나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할머니가 있었던

할머니의 집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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