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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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5, 2025

2025.04.25 오늘의 시

안수현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윗집은 오늘도 많이 더운가 보다

아무렇게나 잘라두어 우리 집 창문에 아른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시끄럽다면서도

마른 토마토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둔다

새순 발끝을 받치고 있는 큰 줄기

손끝이 새파랗다

너를 이렇게밖에 밀어올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누군가와 닮았다

왜 자꾸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걸까,

그냥 그렇게 된 건데 우린

순진한 토마토일 뿐인데

어차피 충분히 어른이 되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자신을 떨어뜨려야 할 텐데

땅에서 났으면서도

먼 하늘만 보고 자라

땅에 묻히기를 두려워하는

엄마 없는 엄마와 엄마밖에 없는 딸

토마토는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린다

홀로 오래 있었던 토마토 과육에선

제 심장을 디디고 선 싹이 자라곤 한다

해묵은 양수를 받아마시며,

그것은 꽤나 외로운 일이다

그래도 토마토는 그렇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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