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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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3, 2025

2025.04.23 오늘의 시

박규현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

친애하는 메리에게

나는 아직입니다 여기 있어요

​불연속적으로 눈이 흩날립니다 눈송이는 무를 수도 없이 여기저기 가 닿고요 파쇄기 속으로 종이를 밀어 넣으면 발치에 쌓이던 희디 흰 가루들 털어도 털어도

​손가락은 여전합니다

사람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은 가장 보편적인 성격을 갖게 될 것입니다

​녹지 않으니까

착하다고 말해도 되나요

​의심이 없을 때

평범한 사람을 위해

​젖은 속눈썹 끝이 조금씩 얼어가는게 느껴졌습니다 극야로부터 멀어지고 싶고

​장갑을 끼지 않아 손가락이 아팠습니다 나에게도 손이 있다니 나무들을 베어 버릴 수 있을 만큼 화가 났습니다

​메리에게 답장을 씁니다

천사 혹은 기원이 있을 곳으로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눈밭에 글씨를 써도 잊혀지는 곳으로 우리가 전부여서 서로에게 끌려다니는 곳으로

​눅눅한 종이뭉치를 한 웅큼취고 있었는데

눈을 뭉쳐 사람을 만듭니다 우리가 소원하고 희망해온 사람

​무겁고 불편한 폭설입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어 그들의 눈을 빌립니다 그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이가 될 것이에요 제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메리, 나는 겨우 있어요

내일과 같이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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