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4 오늘의 시
백은선 <열대병>
초록 대문 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아이 미지근한 밤공기 가로등 주위를 배회하는 작은 벌래들의 소문, 그 뒤를 쫓는 긴 꼬리의 고양이들 공중에서 미끄러지는 먼지들 동그라미 동그라미 주문처럼 읊조리는 하나의 단어
배운 적도 없는데 터져 나오는 첫울음처럼 마주 잡은 두 손, 흩어지는 한순간의 떨림 이름 붙잡고 싶은 여러 가지 색들 뾰족한 연필을 쥐고 꾸욱 손가락을 찔러보는 책상 앞의 나날 밤은 어김없이 밤이구나
기지개를 켜는 바닥의 고양이들 점점 길어지는 고양이들 감출 것이 없어 주머니 속에 찔러 넣는 두 손 문 뒤에 빗금처럼 기대서서 동그라미 동그라미 소리 내 말할 때 입속에서 파르르 굴러떨어지는 투명한 기포들 인사는 쉽고 손가락은 너무 많다
툭 담뱃재를 떨구는 검지 끝 대문 안 쭈그리고 앉아 침을 밭는 여자아이, 여름밤은 혀끝에서 녹아내린다 미끄러운 날개들 쏟아지는 창들의 빛 감은 두 눈속에서 흔들리는 날개들 처음 발음해보는 이름의 울림처럼 조용히 흩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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