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Subscribe
Archives
March 24, 2025

2025.03.24 오늘의 시

구현우 <선유도>

창밖의 비를 좋아하지만 비에 젖는 건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너에게

해주려고 한 얘기가 있어

선유도에서 만나자 선유도에는

오만 색으로 어지러운 화원이 있으니까

녹음된 빗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안정을 찾는 너에게

어울린다 믿는 풍경이 있어

혀끝이 둔감해지면 입안 가득 맥주를 머금고

어디에선가

이 통화가 계속되지 않는다고

네가 여길 때면 무음이 침묵과 다르다면 난치와 감정이라면

그건 바라지 않아도 젖어드는 일

너는 가을옷이 필요하구나 나는 봄옷을 생각하면서

양화대교를 건너고 있어

선유도에서는 볼 수 있을 거야 차마 겉으로는 구분되지 않는 계절

나의 9월은 너의 3월

선유도에서 만나자 선유도에서

직접 본 다음에야 알게 되는 게 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네가 자주 입는 꽃무늬원피스에 수놓은 노랑과 파랑

하나는 무난하지만

하나는 네가 그토록 역겨워하는 향기를 품은 꽃이라는 걸

말해줄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그후의 복잡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 들뜬 채로 한강을 지나가다가

아주

서서히

선유도로 가는 길에 모두 잃어버리고 마는 거야

Don't miss what's next. Subscribe to 靈雨:
Powered by Buttondown, the easiest way to start and grow your newsl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