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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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17, 2025

2025.03.17 오늘의 시

이병률 <사랑의 역사>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힌 한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혔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하면 받치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
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 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
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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