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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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9, 2025

2025.03.09 오늘의 시

육호수 <장마>

우리가 우리에게

발각되지 않는 곳으로 가자

더 많은 공기를 정화할

더 많은 허파가 필요한

오래된 세계에서

더 많은 빙하를 녹일 더 많은 체온이

더 많은 어둠을 흡착할 더 많은 악몽이

더 많은 멸종을 지켜봐줄 더 많은 마음이 필요한

오래된 세계에서

사람인 채로 더 이상

망가지고 싶지 않아

적막 속에 찾아오는 수치심은 아름다웠음

몸을 떠난 살은 몸보다 먼저 썩었음

희망의 내용 없음

여러 겹의 몸을

몸 위에 겹쳐지는 무수한 유령들을

허물로 남겨두고

밤의 아름다움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자

푸른 하늘 은하수 끝나지 않는 손장난

밤이 기어이 밤을 어기는 곳으로

우리라고 부를 이 없음

우주선 없음

다른 세계 없음

희망의 내용 없음

내가 너에게 발각되지 않는 곳에서

울지 않고 기다릴게

거울에 갇힌 구름은 갈 수 없는 곳

어린 신의 어항 속

천사의 아가미를 달고

면벽의 안식 속에 감금되어

죽음과의 문답으로부터 소외되어

나의 굴레만을 나의 것으로

소유자 없는 나의 소유로 여기며

기다리는 이 없는 기다란

기다림

무색무취 수신자 없는 기도를

잇고 있을게

오래된 세계에서

지나치게 외로워서

지나치게 정직했음

영원에 진 빚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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