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8 오늘의 시
안희연 <굉장한 삶>
계단을 허겁지겁 뛰어 내려왔는데
발목을 삐끗하지 않았다
오늘은 이런 것이 신기하다
불행이 어디 쉬운 줄 아니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또 늦은 건 나다
하필 그때 크래커와 비스킷의 차이를 검색하느라
두 번의 여름을 흘려보냈다
사실은 비 오는 날만 골라 방류했다
다 들킬 거면서
정거장의 마음 같은 건 왜 궁금한지
지척과 기척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
장작을 태우면 장작이 탄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오래 불을 바라보던 저녁이 있다
그 불이 장작만 태웠더라면 좋았을 걸
바람이 불을 돕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솥이 끓고
솥이 끓고
세상 모든 펄펄의 리듬 앞에서
나는 자꾸 버스를 놓치는 사람이 된다
신비로워, 딱따구리의 부리
쌀을 세는 단위가 하필 '톨'인 이유
잔물결이라는 말
솥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신기를 신비로 바꿔 말하는 연습을 하며 솥을 지킨다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
내겐 그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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