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9 오늘의 시
김경미 <거기에 그 꽃이 있었다면 안 갔을 겁니다>
유도화 핀 마을엘 도착했습니다
유도화꽃 이렇게 많은 줄 모르고 도착했습니다
우표만 하던 여자의 밥알만 하던 의상실 구석
우물같은 화분에 피어 있던 꽃
자주 박살나던 우표와 밥알과 우물
자주 두 발 치켜든 우물을 지켜만 보던 꽃
지켜만 보던
한밤중의 이웃집들 같던 꽃
이곳,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이곳에도
피는 줄 모르고
몇 시간이나 비행기와 배를 타고 무방비로
도착하고 보니 피었습니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던 꽃
깨진 유리창에도 저만 무성하던 꽃
내가 차갑다면 그 꽃 때문이라고
꽃을 보며 이 편지를 씁니다
여기 꽃들은 같아도 다르리라
쇠보다 두껍고 고무처럼 말랑하리라고
절대 깨지지 않을 것처럼
깨져도 수박처럼 달콤하고 체리처럼 귀여우리라고
수평선보다 단단하고
박공지붕 밑 창문보다 뜨거울 거라고
모든 거울과 유리창이
깨지지 않는 고무이길 간절히 바라던 아이가
비행기를 타고 수십 년이나 걸려서
이렇게 멀리 왔으니
좀 봐주겠지요
무방비로 왔으니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울리지도
깨뜨리지도 않을 거라고
같지만 다른 꽃이라고
그때로부터 거리가 얼마이고 나이가 몇인데
그때로부터 무사이
무사이 돌아갈 수 있겠죠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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