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1 오늘의 시
이윤학 <짝사랑>
둥근 소나무 도마 위에 꽂혀 있는 칼
두툼한 도마에게도 입이 있었다.
악을 쓰며 조용히 다물고 있는 입
빈틈없는 입의 힘이 칼을 물고 있었다.
생선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고 오는 칼.
목을 치고 몸을 토막 내고
꼬리를 치고,
지느러미를 다듬고 오는 칼.
그 순간마다 소나무 몸통은
날이 상하지 않도록
칼을 받아주는 것이었다.
토막 난 생선들에게
접시나 쟁반 역할을 하는 도마.
둥글게 파여 품이 되는 도마.
칼에게 모든 걸 맞추려는 도마.
나이테를 잘라 끊어버리는 도마.
일을 마친 생선가게 여자는
세제를 풀어 도마 위를
문질러 닦고 있었다.
칼은 엎어놓은 도마 위에
툭 튀어나온 배를 내놓고
차갑고 빳빳하게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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