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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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3, 2025

2025.02.03 오늘의 시

민구 <머랭>

머랭을 먹었는데

내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사라졌는데

누군가는 악수를 청하고

나는 여기에 없는데

일곱 시에 일어나는 하루가

반복되고 있었다

머랭을 먹은 후부터

기억하고 싶은 모든 것이 살살 녹았다

약속 시간에 늦어서

중요한 미팅을 날려버리고

밤새 적은 사랑의 편지는

옛 직장 대표에게 날아가버렸다

머랭을 만들려면 설탕과 달걀흰자

그리고 약간의 향료가 필요한데

향은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어서

모카를 넣으면 로티번 맛이 나고

초코쿠키를 넣으면 오레오 맛이 난다

당신이 만든 머랭은 너무 달다

내가 구운 건 아무런 맛이 안 난다

소수의 파티시에만이 그것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많은 군중을 모아놓고

너희 가운데 누가 진짜냐 물어봤자

머랭? 하고 허무한 대답만 돌아올 뿐

향을 구하러 시장에 갔다

머랭을 먹고 실종된 사람을 만났다

나는 무슨 맛을 먹었냐고 물었다

그가 알려준 재료를 받아 적었지만

이 세상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행복한 꿈속의 양털로 짠 이불처럼

한번 차내면 덮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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