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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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31, 2025

2025.01.31 오늘의 시

이혜미 <살구>

기다렸어

울창해지는 표정을

매달려 조금씩 물러지는

살의 색들을

우글거리는 비명들을 안쪽에 감추고

손가락마다 조등을 매달아

검은 씨앗을 키우는 나무가 되어

오래 품은 살殺은 지극히 향기로워진다

뭉개질수록 선명히 솟아나는 참담이 있어

마음을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나무는 침대가 되고

어떤 나무는

교수대가 된다

열매들이 다투어 목맨자리마다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매일 밤 들려와

나무들이 개처럼 죽은 개처럼

허공을 향해 짖어대는 소리가

구겨진 씨앗을 입에 물고 웃는다

과육은 핑계였지

깨어져야만 선명해지는 눈동자들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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