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6 오늘의 시
김개미 <인형에게서 온 편지>
조그맣게 살면 돼. 조그맣게 웃고 조그맣게 울면 돼. 조그만 옷을 벗고 족만 집에 들어가 물뿌리개만 한 샤워기 아래서 콩나물처럼 흠뻑 젖으며 샤워를 해. 조그만 침대에 누워 조그맣게 노래를 불러. 조그만 창문에 들어온 콩알 같은 달.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조그만 시를 낭독하고 조그만 이불을 덮고 자. 조그맣게 걱정하고 조그맣게 한숨 쉬고 조그맣게 생각하고 조그맣게 꿈꾸고 조그맣게 만나고 조그맣게 사랑하고 조그맣게 싸우고 조그맣게 화해해. 나는 한 뼘짜리 인형이니까. 가볍게 걸어가고 가볍게 춤추고 사소하게 고민하고 사소하게 부대껴. 그런데도 더 작아지는 연습을 해. 더 작은 웃음, 더 작은 눈물, 더 작은 시간, 더 작은 밥. 더 작은 세계에 갈 거거든.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당신이 들어오지 않는 세계. 이 작은 세계에서 나는 분주해. 분주하게 한가해. 작은 눈이 축복이야. 나는 커다란 것이 커다란 줄 몰라. 많은 것이 많은 줄 몰라. 물론 작은 것이 작은 줄 모르고 적은 것이 적은 줄도 모르지. 손든 작고 손가락은 힘이 없어서 나는 큰 것과 무거운 것과 중요한 것을 들 수가 없어. 그래서 기뻐. 무엇을 가질 생각 같은 걸 안 하니까. 나는 아무것도 집으로 들고 들어가지 않아서 밖으로 나와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와 옷을 갈아입어. 이 세계는 투명하고 사소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오래전부터 있어온 세계야. 모든 것을 갖춰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 말은 사용하지 않아. 말할 수 있는 건 오늘은 숨이 찰 거라는 것. 조금 있다가 조그만 산꼭대기에 사는 조그만 여우를 만나러 갈 거거든. 당신이 이 조그만 편지를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은 여기서 조그맣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