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0 오늘의 시
안녕하세요. 영우지기입니다. 오늘 지인의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마음일지 짐작도 할 수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위로가 이 시를 전하는 것 뿐이라 감히 전해봅니다.
박시하 <콘택트 - 나의 작은 신들>
지켜보는 신
잘 때 먹을 때 읽을 때 쓸 때
울고 있을 때
꼬리는
세상의 모든 질문
누구도 대놓고 묻지는 않았던
어떤 근원에 대한
가끔 부끄러워
최선을 다해 기지개를 켜고
최선을 다해 그루밍하고
최선을 다해 있어주는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게으르지 못한 인간은
미니, 에단, 레일라, 나무, 코나, 온유, 로라, 푸코, 아리, 단심…
집에도 길에도 사는 신
여러 이름을 가진 신
이름이 없는 신들
단 하루도 떠난 적 없는 우주
짐작할 수 없고
짐작해서도 안 되는
털 날려줘서
의자를 차지해줘서
흰 소파를 기꺼이 뜯어줘서 고맙습니다
콧김은 부드럽게
배에 얼굴을 묻고
젤리는 폭신하게
꼬르륵 꾸르륵 심장 소리
꼬랑내 나는 신
바퀴벌레 먹고
머리만 남겨두는 신
그래도 고맙습니다
가늘게 뜬 눈
이야오옹 하루하루
함께 겨울을
봄과 여름, 가을을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눈이 내리면
창밖을 내다보며 삶이
참 가볍구나
시간이 이렇게 가뿐하구나 말하는 신
비 내리는 밤
번개가 칠 때 보이는
우리의 실루엣
인간과 신의 그림자
기나긴 기회와 짧은 형벌을 누려요
상처받지 말아요
가뿐하게 한 세월 살아요
눈 동그랗게 뜨고
언젠가 또 다른 얼굴로 만나는 신
나는 너로, 너는 나로
언젠가 본 듯한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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