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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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3, 2025

2025.01.13 오늘의 시

최승호 <깨어진 항아리>

금이 가도 불안하고 누가 흔들어대도 불안하고 뚜껑을 덮어버리면 답답해서 숨이 막히던 항아리가 한밤중 난데없이 떨어진 돌덩이에 얻어맞고 산산조각 깨져버렸다.

장독대에 모여 있던 항아리들이 깜짝 놀라 간장을 다 엎지르고 널브러져 있는 깨어진 항아리의 불행을 위로했다.

그러나 깨어진 항아리는 오히려 기쁨에 넘쳐 있는 듯했다.

“걱정들 말게. 나는 지금 시원하고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네. 깨어져서 더 잃을 아무것도 없을 때 비로소 평화롭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네. 이렇게 후련한 적이 없었지. 어느 하늘 어느 별에서 날아왔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돌덩이를 고맙게 여기고 있다네.”

다른 항아리들은 그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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