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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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8, 2024

2024.12.28 오늘의 시

박상수 <18세>

어떤 날은 종일 스탠드에 앉아 운동부 애들이 빳다 맞는 것을 보았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막혀 있었다 철문 앞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담배가 떨어지면 문밖의 소릴 생각했다 나비로 핀을 꽂은 숏커트의 여자애가 머리를 기댔다 사라졌다

등나무 벤치, 오고가는 말들에 파묻혀 있으면 구름이 내려와 어지러웠다 땅에 발을 딛고 잎을 피워 올리는 애들이 많았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언제나 부서진 걸상과 깨진 창문틀, 폐지가 있었고 믿는 건 세계의 일부가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람이 심한 날에는 코스모스도 괜찮았고 다리를 떠는 여자애도 좋았다

경박하게 나는, 옥상에 대해 생각했다 바람 빠진 배구공과 줄이 끊어진 고무동력기, 항상 고여 있을 썩은 물, 나는 히히덕거리며 옥상으로 돌을 던졌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강아지 흉내를 내었다 자꾸만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의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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