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9 오늘의 시
안녕하세요. 영우지기입니다. 해 질 녘 그네에 앉아 땅을 바라본 채 앞뒤로 조금씩 왔다 갔다, 그러다 제 앞에 선 운동화를 기억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전합니다.
이병률 <그네>
그래도 가려 합니다
당신으로 인해 이 세계는 듣고 싶은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뿐이라는 사실을 데리고요
여름이라 드러난 당신 팔목 상처의 흔적은
식물의 줄기 같았습니다
와인병을 따다가 그랬다고요
쇠가 그은 것은 그저 당신 세계를 질투한 것일 테니
그때 잘려 나가지 않은 것은 모두
자기 자리를 받아들이자는 것일지도요
눌러지지 않는 이 어쩔 수 없음이
그저 잡다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당신을 쫓는 것은 답이 아닐지도요
당신은 남겨둘지도요
어제의 세계와 그 세계를 갉아먹었던 불순한 버릇들과
꽃은 왜 이리 붉은 것인지에 관한 의문들을 선명하게요
그래서 가려 합니다
당신을 만나 겨우 변변해진 세계를 연명하려는 것과
그것이 오늘이 아니면 끊어질 것 같음을 알리려고요
이 끈끈함을 정신없이 핧고 있는 나의 편협을
당신에게 들키고 싶은 것일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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